순수산 이야기[2]/힐링,나의 산얘기

[화순] 어머니 품속 같다던 모후산

순수산 2016. 3. 30. 09:54


[모후산 정상(918m)]



어머니 품속 같다던 화순 모후산에 다녀왔다. 바쁜 일상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었는데 감사하게도 시간을 만들었다. 한달에 한번이상 산행을 하자던 나와의 약속은 지킨 셈이다. 오늘도 계단을 내려가려면 꽃게처럼 몸을 옆으로 돌려 내려가야 할만큼 산행 후유증이 크지만 오히려 다리 통증은 즐거운 고통에 속한다.

 

모후산은 순천시, 곡성군, 화순군을 경계 지으며 남북으로 뻗어있다. 해발 918.8m라 그렇게 높지도 낮지도 않아 산행하기에 무난하다고 생각했다. 유마사에서 출발해 용문재를 거쳐 정상까지 왕복 10.2km이니 4시간 정도면 충분할거라 믿었다. 그런데 세상사가 어찌 계획했던 대로 다 이루어지는가. 어긋난 계획을 통해 뜻하지 않게 배우는 기회가 마련해 준다.

 

다른 오후 일정이 잡혀 있어서 우리는 산행을 빨리 다녀와야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화순은 1급 상수원인 동복댐과 주암댐이 있어서 모후산 가는 도로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있었다. 그만큼 화순을 생각하면 깨끗한 물이 떠오른다.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달리면서 화순에서 살고 있는 지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어 서로 안부 문자를 나누게 되었다.

 

초행길은 항상 긴장감이 돈다. 무엇이든 처음하는 것은 설레고 미세한 떨림이 온다. 이번 모후산행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게이션 안내 멘트를 듣고 주차를 하려니 몇몇의 일꾼들이 주차장을 정비하고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남편은 유마사 입구 모서리에 간신히 주차를 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행인은 우리뿐이다. 등산객이 많은 국립공원을 제외하면 이상하게 우리부부가 찾아가는 군립공원 산은 등산객이 별로 없다. “이 산도 우리가 독차지 했군.” 우리가 산에 가면 자주 하는 말이다.

 

모후산 등산안내도를 스마트폰으로 한 장 찍었다. 산행할 때 이 사진은 꼭 찍어둬야 한다. 등산안내도가 산행 중에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이른 출발이라 여유를 갖고 한걸음씩 천천히 걷는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시원하게 들린다. 여름에 오면 계곡에 발을 담그고 수박을 잘라 먹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은 감정의 찌꺼기를 비우게 한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산행하면서 주로 직장인의 고달픔을 담담하게 얘기한다. 이럴때는 부부보다는 직장인의 선후배 관계가 되어 서로 위로하고 토닥거리게 된다. 가장으로서 평소에는 힘든 얘기를 하지 않는데, 자연이 마음의 빗장을 열어 버렸는지 허심탄회 얘기를 털어놓는다.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묵은 감정을 나도 산에서 청소하고 간다.

 

아침식사가 부실했나보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쉼터에 앉아 준비해간 삶은 고구마와 계란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주변을 돌아보니 새소리가 들린다.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산의 호젓함을 마음껏 즐긴다. 이런 맛을 알기에 한달 계획에 꼭 넣는 것이 산행이다.

 

생각보다 경사가 급해 산행이 힘들었다. 땀을 흘려 2시간 동안 올랐더니 강우레이더 관측소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모후산 표지석을 찍어 인증샷을 남기려고 하니 오전 11시라 역광으로 시커맣게 찍힌다. 너무 이른 도착이 문제였다. 우리는 사방팔방을 둘려보며 산세를 더듬었다. 굽이굽이 산그리메가 멋지다. 그동안 촉박한 삶을 근시안처럼 살았는데 이 시간을 통해 멀리보는 지혜를 얻는다.

 

강우레이더는 전파를 이용하여 반경 100km 이내의 강우분포를 관측하는 일을 한다.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홍수통제소로 전송하여 돌발홍수 및 도시홍수 등의 방제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관측, 통신시설을 말한다. 산을 오르면서 모노레일이 강우레이더 관측까지 설치된 것을 알게 되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중국 만리장성을 닮았다.

 

정상에서 사진 몇 컷 찍고 좌측 하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눈이나 비가 오면 대형사고가 날것 같은 급한 경사 길을 얼마쯤 내려갔는지 가면 갈수록 주차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흔한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정표가 보이는 곳까지 일단 가보기로 했다. 유치재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등산 초입에 찍은 등산안내도를 확대해서 보니 정상에서 정반대로 2.2km를 간 셈이다. 아뿔싸. 이 모후산에서도 우리는 강하게 추억을 남기는구나. 어머니 품속 같다던 아늑한 모후산을 바랐건만 내게는 유격훈련 시키는 아버지 산처럼 느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정상을 향해 유턴을 했다. 원래 계획했던 거리보다 왕복 4.4km를 더 걷는 셈이다. 가볍게 걸었던 산행이 막상 되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정표를 제대로 확인도 안하고 하산했냐,며 남편에게 따져 물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은 기본적으로 산길과 방향에 대해서 여자보다 촉이 있지 않냐,며 볼멘소리도 해댔다. 미안한 생각을 갖고 있던 남편에게 생각없이 말을 쏟아버려서 후련할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남편은 “모후산 표지석을 찍으라는 신의 계획이었겠지.”라고 어설픈 변명을 한다. 우리는 신의 계획대로 오후1시에 다시 정상에 도착해서 셀수 없이 인증샷을 날렸다.

 

돌다리도 다시 한번 두들겨 확인하라는 것을 모후산에서 배웠다. 우리는 7시간 동안 14.6km를 걸었다. 행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다리 통증이 말해주고 있다. 말하기 전에는 세 번 생각하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나에게도 이롭고, 상대방에도 이롭고 듣는 사람에게도 이로운 말을 하리라. 남편에게 더 잘해줘야겠다.



[상수원 때문에 가는 길이 안개속]




[등산안내도는 필히 찍어 가기 / 지도역할]






[고구마, 삶은 달걀, 과일]




[키작은 엘레지를 찍고 있음]





[산속은 아직도 겨울]



[만리장성처럼 보임]




[모후산 강우레이더 관측소]


[화순 모후산 정상]






[왔던 길 다시 되돌아감]





[휴우~ 힘들다]














[화순 모후산 그리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