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일림산 정상]
보성 일림산에 다녀왔다. 산은 언제 찾아가도 좋지만 특별히 제대한 아들과 함께 한 첫 산행이라 의미가 크다. 자동차 뒷좌석에 아들을 태우고 일림산으로 가면서 2년 전에 논산훈련소로 데려다 줄때가 생각난다고 남편이 말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제대를 했고 가족이 함께 산행을 떠나는 현실이 눈물겹도록 감사하다.
일림산은 667m의 고지로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일림산의 철쭉은 100ha 이상으로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를 자랑하고 있다. 군락지의 길이는 12.4km에 달하여 세계적이라고 추켜 세운다. 이 산의 철쭉은 어른 키 만큼 크고,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자라서 철쭉꽃이 붉고 선명하다. 정상에 오르면 보성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며 붉은 철쭉이 만개하면 활활 타는 산을 볼수 있다고 한다.
간식으로 컵라면과 물, 커피, 과일을 챙겨서 두 남자들이 하나씩 배낭을 멨다. 8시에 집에서 출발했더니 9시 30분경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국에서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6대가 도착할만큼 산이 유명하다. 우리는 용추 폭포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곡따라 걸었더니 시원한 편백숲 그늘이 더위를 식혀준다. 은은한 피톤치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하고 박새가 내 마음을 대신해 노래를 불러준다.
산을 절반쯤 오르는 길에 조릿대 꽃을 봤다. 산죽이라는 조릿대 꽃은 벼과에 속하는 꽃이다. 화려한 꽃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꽃인줄도 모르고 지나치는데 남편과 나는 “꽃이다”라고 외치며 반갑게 쳐다봤다. 조릿대 꽃은 해년마다 피는 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대나무꽃은 평생 보기 힘든 꽃이라 한다. 100년마다 한번씩 핀다는 귀한 대나무꽃이 피었다는 뜻은 대나무가 제 할 일 다하고 죽는다는 뜻이라고 하니 좀 슬프긴 하다.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어디 인생뿐이랴. 산에 오르니 일림산의 철쭉이 절반이상 져버렸다. 개화 시기가 작년보다 3주 정도 빠르다고 하더니 온 산이 활활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더위에 톡 쏘는 탄산음료를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는데 김빠진 음료를 마신 듯 밍밍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5월은 철쭉과 장미의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구 온난화로 시도 때도 없이 피어버린 꽃들 때문에 그 의미가 궁색해진다.
산에 다니다보니 사진을 찍게 된다. 산에는 같이 가지만 사진찍기를 굉장히 싫어했던 남편이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저만치 앞장서서 걷다가 바위 위에 올라 멋진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내게 부탁을 한다. 사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사진을 보며 그날의 추억을 곱씹게 된다. 내가 찍어준 남편의 사진 몇 점이 마음을 붙잡았나보다.
아들과 동행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봐도 흐뭇하다. 남편은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듯 힘찬 발걸음이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올라가는 부자의 뒷모습을 보니 배부르다. 내게 자식이 하나뿐인데 이럴땐 아들이라서 고맙다. 남편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남편의 뒷모습이 외롭지 않아 보이고 아들은 뒷모습에서 패기와 열정과 희망을 봤다.
아들에게 아빠란 어떤 존재일까. 컴컴한 터널을 혼자 지날 때 밝게 비춰지는 헤드라이트가 아닐까. 아들이 살아가면서 처음 맞닥뜨려 당황스러운 순간마다 남편이 곁에서 조력자가 될 것이다. 아들이 무엇이든 물어보면 척척 대답해 주는 남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이 아들에게 종종 물어본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뜻일 게다. 세대교체가 이뤄진 셈이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무등산을 비롯하여 지리산, 한라산 등 산행을 함께 다녔기에 일림산은 수월하게 산행을 다녀왔다. 정상 표지석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하산후 점심을 먹기 위해 계곡 옆자리를 잡았다. 반반한 바위 위에 판초이를 깔았더니 멋진 식탁이 되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컵라면을 먹는 남편이 세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인다. 소소한 감동이 주는 행복을 느끼기에 산에 오면 항상 가슴이 벅차다.
아주 오랜만에 가족 산행을 다녀와서 행복하다. 아들은 군대에서 행군을 하고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고 한다. 근교에 있는 허브찜질방에서 산행의 피로를 풀고 맛집에서 외식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니 새 힘이 불끈 솟는구나.
[편백숲 길]
[흐르는 계곡에서]
[산악 자전거 길에서]
[오르면서 우리는 겉옷을 하나씩 벗었다]
[산죽 꽃]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객들]
[계곡 옆에 앉아 간식을 먹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먹는 라면 맛은...]
[부자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흐뭇하다]
[아들~, 널 향한 엄마아빠의 마음이야!]
[나를 향한 두남자의 마음이다.]
[군제대후 아들과 함께 한 행복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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