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구름다리 앞에서]
설 명절 황금연휴로 5일을 부여받았다. 연휴동안 우리 부부가 꼭 해야 할 일은 산행이다. 주일 아침이면 아무리 바빠도 꼭 챙겨보는 TV 프로그램 영상앨범 [산]을 시청하는 데 이번주에는 진안 구봉산이 나왔다. 진안이면 집에서 2시간 정도 달리면 충분히 갈수 있는 곳이기에 설날 다음날 진안으로 출발했다.
명절을 보내고 귀경길이라 도로가 막힐수도 있으니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국도로 갔다.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홍삼으로 유명한 진안에 도착해서 다행이다. 진안에 오니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추억을 쌓기 위해 왔던 진안 홍삼스파가 생각났고 모악산도 생각났다. 오전 10시쯤에 도착한 구봉산 주차장에는 우리처럼 부부 산행인들이 주로 왔다.
겨울산행은 장비를 철저히 준비해야 조난사고를 당하지 않는다. 비록 눈은 내리지 않지만 산은 눈이 쌓여 있을거라 생각했기고 아이젠을 챙겼다. 털모자와 털목도리, 장갑과 스틱도 챙겼다. 간식은 사과를 깎아서 담고 한라봉 껍질을 벗겨서 담고 고구마도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커피와 물을 챙겼다. 아주 간단한 간식만 챙기자는 주의인데 추운날 주위에서 컵라면 냄새를 풍기면 은근히 부러워진다.
산행은 초입부터 난코스였다. 바닥이 완전히 얼었다. 처음부터 아이젠을 신고 오를까, 생각하다가 오르막이니 올라갈때까지 올라간 후 힘들면 아이젠을 신기로 했다. 봉우리가 9개라는 뜻의 구봉산은 바위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악산 중의 악산이다. 그런데 그 바위가 얼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사가 90도 정도로 급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산행을 기다렸건만 초긴장한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진안은 춥기로 유명하다. “무진장”의 사전적 의미는 엄청나게 또는 하염없이 많다는 뜻이다. 옛말에도 “무진장”이라는 뜻은 무주, 진안, 장수군을 합쳐서 부른다. 무진장 춥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갈때마다 유격훈련을 방불케할만큼 로프를 잡고 빙벽을 타야하는 꼴의 연속이다.
방콕하는 사람들은 우리같은 사람을 보고 사서 고생한다고 하겠지. 그래도 방콕하는 것보다는 백배는 좋다. 추운 겨울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험한 산행에서 내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체력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된다. 또한 우리나라 산 중에 하나를 알아가는 귀한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1봉은 건너뛰고 곧바로 2봉으로 올라갔다. 너무 미끄러워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다. 우리보다 연세가 더 많은 분들을 보게 되었는데, 스틱도 아이젠도 없이 가는데, 보는 내내 위험해서 내 심장이 쿵할 정도였다. 제아무리 산행의 선수라고 해도 항상 만반의 등산장비와 자연에 대한 겸손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진솔한 땀을 흘리며 한걸음씩 걸어서 산을 향해 올라가는 자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봉우리 4봉과 5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2015년 7월에 완공. 길이 100m, 폭 1.2m, 해발고도 740m) 앞에 섰을때는 그동안의 수고를 한순간에 물리쳐준다. 구름다리에 도착하니 산행의 60 퍼센트는 달성한 기분이 들어서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아무리 배낭가방이 무겁더라도 다음 산행때는 컵라면과 보온병을 챙기리라.
간식을 먹은 후 7봉과 8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까지 마의 계단들을 오르고 내리고 빙벽을 오르고 내리고 한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사고는 방심할 때 아차 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아이젠을 신고도 눈길에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아이젠의 날카로운 톱니바퀴로 바닥을 찍어 내려 꽂아서 걸어야 했다. 힘겹게 올라가서 이것이 끝인가 싶었는데 다시 오르막이 나타나고, 어렵게 빙벽타기를 한후 한숨을 돌렸더니 다시 빙벽을 만난다. 산행은 우리네 인생사와 많이 닮아 있다.
8봉에서 잠깐 선택의 기로에 섰다. 500m만 올라가면 9봉 정상인데 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그러나 너무 험한 산이고 날씨의 악조건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깔끔하게 하산을 결정했다. 오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내리막을 2km 넘게 가야 했기에 가는 길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아이젠을 신었을때는 눈이 쌓인 곳이 훨씬 걷기 편하다. 그러나 산길이 어디 호락호락한가. 눈이 쌓여 있는 곳도 있고, 얼어있는 곳도 있고, 양지바른 쪽은 눈이 녹아서 질퍽질퍽 진흙길도 있었다. 진흙길을 피해 푹신한 눈길을 밟기 위해 까치발로 좀 걸었더니 종아리가 땡기고 스틱 잡은 어깨에서 통증이 찾아온다. 최악의 산행 중에 랭킹 2위에 등극한 구봉산이다. 아직까지 랭킹 1위는 장흥의 사자산이다.
우여곡절 5시간 동안 산행을 하고 어렵게 하산을 했다. 주차장 포장마차에서 2천원에 3꼬지하는 어묵으로 추위를 달랬다. 추위에는 따뜻한 국물이 최고다. 속을 국물로 달래줬더니 속이 편안하다. 산행 후 필히 거쳐야 하는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었더니 하루가 충만함으로 가득찼다. 안전하게 잘 다녀왔으니 이 또한 모든 것이 감사한 하루다.
[빙벽 또는 진흙길]
[1봉]
[구름다리]
[봉에서 봉으로 이어지는 길, 얼어있는 바위 오르고 내리기]
[힘들게 오른 자만이 느끼는 여유]
[마의 계단들]
[언 저수지 앞에서 구름다리를 올려보니~]
[구봉산 위에서 수묵화 한점]
[계단, 또 계단]
[언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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