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개의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하나의 나를 갖는 뜻이다. 학창시절부터 같이 하던 친구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 다음으로 오랫동안 보는 관계가 된다. 이런 친구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걱정 말아요! 그대』 라는 JTBC <김제동의 톡투유> 제작팀이 지은 책을 보면, 친구에 대해서 청중들 각자의 정의를 담아 놓은 글이 있다. 친구는 언제 만나도 어제본 것 같은 사람이고 대나무숲 같은 사람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이이며, 내 무덤에서 슬퍼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목욕탕을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고 뜬금없이 웃게 해주는 사람이란다.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 쓰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사람, 침묵이 어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진짜 친한 친구는 아무 말 안하고 각자 다른 거 하면서 열 시간도 있을 수 있는 사람이고 했다.
지난주에 고교 동창 셋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모임의 친구들은 뭐든지 속전속결이라 뜸 들이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웬만해서는 오케이를 외친다. 무슨 의견에도 아니오,라는 반응이 거의 없어서 회장인 나로서는 모임을 이끌어가는데 참 수월하다. 그만큼 서로 통한다는 얘기다.
셋이 모여서 담양 한재골 임도를 3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산책을 시작한지 20 여분 지났을까, 갑자기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우산 쓰고 다시 산책하면 되었기에 왔던 길을 돌아가서 주차해 놓은 차 트렁크 안에서 우산을 꺼내 쓴 후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뜻맞는 친구끼리 걸으니 지루할 것이 하나도 없다. 친구와 함께 하면 무엇이든지 놀이가 된다. 녹음이 짙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그랬을까. 방대한 이야기거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 많은 이야기를 어디에 담아 놓고 살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왕복 2.4km 거리를 산책하고 찜질방 옆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무엇을 먹어도 맛있는데, 식당의 매너가 형편 없어서 우리의 식욕을 맛있게 자극하지 못했다. 많이 먹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손님상에 무엇이 필요한지 센스있게 채워줘야 하는데, 반찬도 없이 식사를 하라고 해놓고 주인장은 우리상으로 오더니 의례적으로 자기 식당 고기는 특급고기라며 홍보를 해서 언짢았다. 오랫동안 다녔던 식당이라 잘 알고 있는데 점차적으로 서비스가 예전만 못해서 손님들도 줄어 들었는데, 우리도 두 번 다시 가지 말자고 했다.
식사를 하고 바로 찜질을 하면 힘들 것 같아 찜질방 2층 휴게실로 올라가 얘기를 나눴다. 모임에 불러줘서 삶의 숨통이 트였다는 친구와, 이 모임의 친구들은 만날수록 더 좋다는 또 다른 친구의 얘기를 듣자니 회장으로서 마음이 흐뭇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모임을 여러개 갖게 된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만들어서 참석하고 싶은 모임이 있는가, 하면 모임 일정이 잡혀도 핑계를 대면서 참석하고 싶지 않는 모임도 있다. 고교 동창 넷이 모이는 이 모임은 만나면 힐링이 되기에 전자에 속하는 모임이다. 모임을 공지하면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너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니?”라고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에게 물었다. 한 친구는 “내가 못느낀 나를 매의 눈으로 찾아주는 고마운 존재이고 함께 있으면 시간을 쾌속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라고 했다. 또다른 친구는 “내 안의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 주는 존재이며 나에게 좋은 자극을 전해주는 존재”라고 했다.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니 공감이 간다. 나에게 친구란 예뻐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사람이다. 친구란 또 다른 나를 바라보게 한다. 오랜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나를 더욱 더 세심하게 뒤돌아보게 하는 영혼의 동반자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직장인이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쌓인 애환을 얘기하며 털어냈다. 지금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알게 되었고 각자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갖게 했다.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그들을 보면서 반성하게 했다. 40대 후반인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련지 기대가 하며 소망을 품어서 아름답게 그려보기도 했다.
일찍 결혼하여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는 친구들보다 시간적 여유가 항상 많았다. 남편과 산을 자주 다니면서 산행 후 피로를 풀고자 온천을 꼭 간다. 온천에 가면 주로 50대 중반의 여자들이 여럿이 와서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목욕을 하는데 어찌나 부럽던지. 수다를 떠는 여자들을 구경하면서 나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온천을 올까, 생각했는데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친구들과 온천욕을 즐기고 싶다는 내 바램은 몇 년 전부터 왕성하게 실천하고 있다.
오전 9시에 만나 오후 4시가 될 때까지 7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모임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딸,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신분을 잊게 했다. 우리들의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여자들은 모이면 맨날 남편 이야기와 자녀들 이야기만 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참 우정 속에 우리의 만남은 한 여자로 살면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여행이 되었다.
여자들끼리 친구란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기에 관계가 지속되는지도 모른다. 60평형의 집에 살든 20평형의 집에 살든 친구관계에는 변함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굴이 빼어나게 잘 생겼든 못생긴 친구든 외모가 친구 관계에 변수를 주지는 않는다. 여자 친구들은 공감력이 뛰어나고 친화력이 강하여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더라도 응집력이 상당하다.
반면에 남자들은 어릴적 친구가 나이가 들어서도 유지되는 관계가 드물다고 한다. 남자들이 모이면 수평이 아니라 수직의 관계가 형성되어 바로 일렬로 줄이 세워진다고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저 잘난 친구보다 못하니 서열 몇위 쯤이 된다고 암암리에 본인이 정해서 진정한 친구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출발점이 같았는데 살다보니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이해타산에 치여서 가슴의 평수가 작다못해 쪼글아드는 세상이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기에 함께 하기에는 껄끄러운 친구가 남자들 세계에는 있는가 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있다. 부처의 말씀을 담은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상 모든 일에 집착을 버리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라는 뜻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마음으로 와닿는다. 무소의 뿔처럼 친구가 혼자 걸어갈 때 그니의 어깨에 내 팔을 걸치며 함께 걸어가 주리라. 친구가 있다는 것은 고독은 즐기되, 결코 외롭지 않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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