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저녁 식사 때 화제거리를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한다. 같은 책을 읽어도 서로 다른 환경과 처지로 결론이 다를 수 있는데, 하물며 각자 읽은 책 이야기를 한다면 화제거리는 흥미진진할 것이다. 나또한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대화가 끝나지 않을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생각을 키우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도 책은 꼭 읽어야 한다. 며칠전 친구가 버스 터미널 의자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가 히끗한 할머니가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우리도 이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텔레비전 드라마보다는 책이야기를 주로 하며 살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드라마 보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훨씬 많다.
오랜 모임으로 소통이 잘 되는 친구들과 며칠전 산책을 갔다. 얼굴만 봐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친구들이다. 무더운 날씨지만 산책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냐?”라고 내가 운을 띄우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읽고 있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숙이라는 친구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읽고 있었다. 그 중에서 2권 조시마 장로가 임종을 목전에 두고 아끼는 사람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중에 ‘신비한 방문객’이라는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친구관계를 오래 지속하려면 내 치부를 다 드러내지는 말라고 조언을 한다. 비밀리에 말한 치부가 두고두고 본인을 부끄럽게 만들어서 결국 말했던 상대를 만나기 꺼려하는 현상까지 빚어진다고 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 순간의 분위기에 취해서 내 비밀을 친구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비밀을 털어놓은 친구를 대하기가 힘들어졌다. 그 친구 앞에 다가서면 나체로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친구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며 그렇기에 치부를 얘기할때도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희라는 친구는 이지성, 정회일의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 책을 읽고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다며 운명을 바꿔주는 독서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책이라 했다. 활기찬 삶을 살아가기 위해 독서의 매력을 전파한 책이란다. 그러면서 친구는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했지 번듯하게 책하나 읽지 못했던 본인의 조급함을 이제는 내려놓고 싶다고 했다. 한달에 한권이라도 책을 꼭 읽겠노라고 우리들 앞에서 다짐도 했다.
나는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6년째 고등부 교사로 아이들을 섬기고 있다. 15명의 고등부 교사들은 나를 제외하고 하나같이 가방끈이 긴 선생들이다. 명문대를 나온 현직 교수가 세명이고 교편 생활을 하신 선생님도 있고 학원 강사, 공무원 및 사업가도 있다. 그 틈에 가방 끈 짧은 내가 당당하게 함께 어울릴수 있는 것은 책 읽을때가 가장 행복한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나는 김이율의 『마음에 지지 않는 용기』를 읽었다. 쉽게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바쁜 일상에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들에게 일침을 놓는 책이다. 변화되고 혁신되지 않으면 도태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썼다. 성공한 여성들은 한결같이 확고한 자신감이 있다며 건강관리, 시간관리, 행복관리를 잘한다고 했다. 낯설고 힘겹고 두려운 것에 뛰어들라고 한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야 할 것은 낯섦이 아니라 익숙함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난후 어떤 변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관념적인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이 글을 쓰면서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찾게 되었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중요하지 않는 주변의 곁가지들을 과감히 쳐내야겠다. 그래야 목표한 것에 집중할 수 있고 매진하다보면 그것은 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키는 몇 센치나 되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 명이나 되냐고 상대의 의중은 살피지 못하고 지극히 사생활 침해에 관한 질문만 어리석게 했다. 지금은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종종 묻는다. 내가 읽었던 책을 읽는다면 허심탄회 대화의 장이 될 것이고 내가 읽지 않는 책에 대해서 얘기한다면 나는 상대의 말에 경청을 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책 한권은 읽으려고 힘쓴다. 틈틈이 신작의 서평도 읽고 일간지 칼럼도 챙겨서 읽으며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산다. 독서도 중요하지만 지행일치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피오섹슈얼(sapiosexual)이다. 현란한 외모가 아니라 똑똑하거나 지혜로운 사람, 성숙한 사람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요.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탈무드에 나와 있다. 나의 부족함을 알기에 오늘도 책을 읽으며 빈곳을 하나씩 채워간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늘 깨닫는다. 외모의 섹시함은 진작에 포기 했으니 뇌가 섹시한 여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7. 06.17. 서구 금당산, 풍암호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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