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힐링,나의 산얘기

[구봉산] 아홉 개의 봉우리를 찾아가는 재미

순수산 2019. 6. 20. 14:29

 

[정상 1,002m]

 

 

 

 

3년 전 겨울에 구봉산을 처음 가봤다. 아이젠을 신었는데도 빙판의 등산길에서 여러번 넘어졌던 기억이 난다. 8봉에서 정상 9봉까지 올라가는데 산세가 험해서 위험했다. 천왕봉을 500m 앞에 두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에 오늘 구봉산을 다시 찾았다. 삐적 마른 산등성이만 봤던 겨울의 모습과는 다르게 초록 숲의 밀림이 우리를 맞이해 줬다.

 

전북 진안에 있는 구봉산은 아홉 개의 봉우리가 줄지어 있다. 100대 명산 중에서 69번째에 속하는 구봉산은 4봉과 5봉을 잇는 구름다리가 있는데, 국내 최장 길이 100m 가 된다. 봉우리들은 제 9봉인 천왕봉(1002m)을 주봉으로 산들이 깎아 세운 듯한 절벽으로 되어 있다. 산이 험준하지만 사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기에 빼어난 자태를 보여준다.

 

부부가 함께 공유하는 추억이 많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남편과 취미가 같아서 산행을 자주 하게 된다. “젊은 부부가 산에 다니니 보기 좋다. 나도 내 마누라가 산에 함께 온다면 업어서라도 올라가겠네.”라고 말했던 산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의 말씀이 종종 생각난다. 우리부부를 예쁘게 보신 것이다. 앞으로 남편과 하는 산행이 더 즐거울 것 같다.

 

6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계속 오르막이라 땀으로 온몸이 젖었다. 4봉 구름정에 앉아 텃밭에서 따 온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데, 아름다운 경치 속에 우리부부가 함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산에서 먹는 소박한 간식은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한 점이 땀을 식혀주는데 감사하다. 산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풍경, 바람, 햇빛을 아낌없이 주는 자연을 보면서 나도 자연답게 살자고 마음에 새겨본다. 오늘도 자연을 통해 보고 배우는 것이 있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힘들다는 산행을 또 나서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제 1봉을 시작으로 한 봉우리를 오를때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해 가면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봉우리를 찾아 가는 것이 문화재 투어 스탬프 찍기 놀이처럼 재미있었다. 8봉까지는 힘든 줄도 모르게 올라갔다. 초행길이 아니기에 여유도 있었고 집에서 일찍 서둘러 출발했기에 산에는 등산객이 거의 없어서 한산했다. 원래 등산객들로 북적이는 구름다리인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7봉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 커다란 바위 틈 사이에서 불어오는 냉동고 바람이 한 줄기 땀을 씻겨준다. 대형 냉동고 문을 활짝 열면 이런 냉기가 나올까. 아마도 자연이 주는 이 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냉동고 바람이 부는 곳을 산행 중에 만나게 된 것이다. 힘든 등산 때문에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되지만 생각지도 못한 냉동고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숲 속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산행 중에 구름다리를 만나면 꼭 하게 되는 우리 부부만의 습관이 있다. 그것은 공중부양이다. 땅을 밟고 뛰기도 힘든 공중부양을 우리는 흔들다리 위에서 뛴다. 하늘 높이 뛰어 오르는 것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직 젊다는 뜻이고, 활기차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일단 뛰어 보면 아이들마냥 신나서 또 뛰게 된다.

 

8봉에서 정상 9봉까지 가는데 숲이 우거져서 밀림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계속 오르막이라 길이 험난하다. 계단은 어찌나 많던지. 계단의 경사가 직각에 가깝다. 좁은 바위 사이를 양쪽 로프를 잡고 오르기도 하고 스틱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손과 발을 써서 네 발로 기어 오르기도 했다. 전날 비가 와서 바닥은 미끄러워 위험한데 정상이 코 앞이라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냈다.

 

평일 동안 열심히 일 한 보상을 주말에 산행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살면서 인생의 마침표를 찍지 않으려면 자주 쉼표를 찍어서 쉬게 해야 오래 달릴 수 있다. 잠시 너럭바위에 앉아 구운 계란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산세를 내려다 봤다. 한걸음씩 걸어온 거리가 어마어마하다. 우리가 걸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가 펼쳐진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고 작은 걸음들이 모아져서 1000 고지를 넘는 곳을 올라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첫발을 어디에 내딛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도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구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와 반대편에서 올라왔는지 ‘명산 100 도전단’이라는 빨간 타올을 깔고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일행들로 소란스럽다. 그들 뒤에 우리도 차례를 기다려서 인증 사진을 찍었다. 사실 정상에서는 오래 머물지 못한다. 좁기도 하고, 그늘도 없고 다른 일행들에게 자리를 비켜 줘야 한다. 겨울에는 몹시 춥고 여름에는 엄청 덥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상에 오르는 일은 행복한 산행의 정수가 아닐까.

 

정상에서 사진만 찍고 바로 하산 길로 접어 들었다. 하산은 왔던 길이 아닌 돈내미재를 거쳐서 양명마을 쪽으로 내려왔다. 등산할때보다 하산할때는 긴장을 더하게 된다. 1000 고지의 산이었으니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힘든 하산을 위로하듯 800m 지점에서 오디를 만났다. 오디를 딴 손가락도 혀도 금방 까매진다. 과즙이 터질 때마다 입안에서 달디 단 오디향이 번진다. 오디를 먹으니 오늘 산행의 보답이 된 것 같아서 하산길이 가벼워진다.

 

아름다운 산, 구봉산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왕복 5.6km의 거리를 5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피로를 풀고자 온천욕도 하고 맛있는 저녁식사까지 하고 귀가하니 집을 나선지 12시간 만에 귀가했다. 하고픈 산행을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오른 날은 가장 알차고 충만한 하루가 된다. 앞으로 인생의 봉우리가 굽이굽이 펼쳐지더라도 오늘처럼 꿋꿋하게 이겨내리라. 산행 후 겪게 되는 근육통과 구봉산의 매력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

 

 

[4봉과 5봉 사이를 잇는 구름다리]

 

 

[파노라마]

 

 

 

 

 

[제 1봉]

 

[제 2봉]

 

 

[제 3봉]

 

 

[제 4봉]

 

 

 

 

 

[제 5봉]

 

 

 

 

 

 

 

 

 

 

 

 

 

 

[공중 부양]

 

 

[제 6봉]

 

 

[제 7봉]

 

 

[제 8봉]

 

 

 

 

 

 

[제 9봉, 정상]

 

 

 

 

[오디를 따먹고 있음]

 

 

 

 

 

[계단...또 계단...]

 

 

[텃밭에 고추 10뿌리 심는 우리인데, 이렇게 많은 고추농사를 하고 있는 노부부를 보는데... 존경스럽다.]

 

2019.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