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힐링,나의 산얘기

[남원 봉화산] 철쭉에 바람을 맞다

순수산 2020. 4. 29. 16:19


[남원 봉화산 정상 919.8m]


 


4월 하순이 되니 어딜가든 철쭉을 보게 된다. 요즘 출 퇴근할 때 회사 화단에 핀 붉은 철쭉과 눈맞춤을 하며 웃는다. 문득 철쭉산으로 유명한 장흥 제암산과 지리산 바래봉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남원 봉화산도 철쭉으로 알아주는데 이번에는 봉화산을 가기로 했다. 어차피 산행이 목적이니 철쭉이 피지 않았더라도 우린 괜찮다.


집에서 1시간 정도 운전해서 봉화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국립공원급의 관리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도통 등산의 초입이 어디인지 초행길인 우리는 난감했다.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할텐데,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가에 봉화산철쭉군락지라는 표지석이 있길래 일단 그쪽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올라가는데 축사와 오폐수처리장에서 심한 냄새가 났다. 그 구간을 지나가는데 코를 잡고 갈 정도였다. 산행 초입부터 풋풋한 이미지가 아니라서 실망이 앞선다. 내 사전에 포기는 없는데 과연 봉화산 정상까지는 갈 수 있을지 처음 먹었던 설레임은 사라졌다. 등산 안내표시가 없는 곳을 순전히 숱하게 다녔던 등산의 감으로 올라갔다.


도시의 철쭉은 활짝 핀지 오래 되었다. 도시보다 기온이 낮기에 산은 고지별로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르다. 아마도 도시보다 한 달은 늦게 필 것 같다. 걸어서 올라간 후에야 해발 600m까지 차로 올라갈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운동하려고 온 산행이니 걸었다고해서 서운할 것도 없다.


봉화산은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에 위치해 있다. 우린 남원에서 올라갔다. 이곳은 봉화대와 봉수대의 유적이 남아 있으며, 봄철에는 자연산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고 가을에는 억새가 유명하다고 한다. 장수군청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에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봉화산 철쭉단지 등산로 출입을 자제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군락지에 도착했는데 철쭉은 이제 막 피려고 움트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산에 철쭉이 피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표지판도 떨어져서 바닥에 누워져 있고 햇빛에 탈색된 글자는 읽기도 힘들 정도 관리가 허술하다. 철쭉 군락지는 공사 작업자들이 재조성을 하고 있었다. 봉화산을 오르면서 느낀 것인데, 너무 순탄한 산행이면 추억할 것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여기저기 기억에 남을만한 포인트를 숨겨 놓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712m 고지의 매봉에서 잠깐 쉬었다가 반대쪽에 있는 봉화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특별히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산행하는 내내 기분이 상쾌했다. 산행 초입의 기분 나쁜 냄새는 금방 잊어버렸다. 힘들지 않는 이런 산이라면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정상까지 올라갔다. 비록 봉화산 철쭉한테 바람은 맞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오랜만에 폐부 밑바닥까지 쌓여 있는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깨끗하게 청소한 개운한 날이다. 정상에서 오붓하게 간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돌풍이 불어와 깎은 사과와 껍질 벗긴 군계란에 흙먼지가 들어갔다. 장난꾸러기 바람 때문에 생수에 씻겨서 간식을 먹기는 처음이다.


하산을 하면서 초보 농사꾼 남편은 이것은 두릅나무야.”라고 나무를 지목해서 알려준다. 두릅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자기야, 여기도 두릅나무가 있어.”라고 했더니 자세히 보라며 자잘한 가시가 있는 것이 두릅나무이고 이렇게 가시가 없으면 옻나무이고 큰 가시가 박혀 있으면 엄나무라고 했다

 

남편한테 나무 강의도 잘 듣고 무사히 산행을 잘 마쳤다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목에서 반갑지 않는 뱀을 만났다. 남편이 먼저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며 뱀이다!”라고 소리를 쳤더니 도로를 가로 질러서 마실을 가려는 뱀이 우리 때문에 놀랐는지 오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풀속으로 들어갔다. 길이가 50cm 정도 되는 뱀이었다. 습하지도 않은 쾌청한 날에 뱀이 출몰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산행의 시작이 아니라 산행의 끝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세상에 그냥 주어지는 당연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노력과 기록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진정한 내 것이 된다. 귀찮아서 하지 않으면 추억을 오래도록 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서툴더라도 산행기를 써놓으면 세월이 흘러도 봉화산의 추억을 맛볼 것이다.


봉화산(919.8m) 산행을 통해 남편과 또하나의 추억 쌓기를 했다. 휴게소에서 남편은 라면에 공기밥을 주문했고, 나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주문해서 둘이 사이좋게 잘 나눠 먹었다. 라면을 먹더라도 휴게소에서 먹는 음식 맛은 설레임이 있다. 후식으로 갓 구운 빵에 아메리카노를 곁들어 먹는데 행복이 스며들었다. 산행의 여유를 음미하며 아주 특별한 하루를 잘 만들었다.








[철쭉 군락지/ 철쭉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










[간식 뚜껑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




[봉화산 철쭉 군락지/ 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