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란 단어에 수학여행이 오버랩 된다. 고등학교 수학여행때 설악산 흔들바위까지 갔던 30년도 더 지난 추억이 있다. 멀미를 심하게 했기에 버스 운전사 바로 뒷좌석에 담임선생님과 같이 앉았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던 버스 안에서 결국 멀미를 했고, 그 이후 강원도에 대한 기억은 행복하지 않았는데 2박 3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행복한 추억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오리라.
강원도까지는 장거리다. 부부 네쌍이 순천에서 모여 속초에 있는 펜션까지 장장 500km 넘는 거리를 달렸다. 5시간을 넘게 운전해야 했기에 혼자 운전을 한다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온다. 이번 여행은 누구나 운전할 수 있도록 단기보험을 넣어서 4명의 남자들이 돌아가면서 운전을 했다. 한사코 운전을 서로 하겠다고 해서 대기자 번호표를 줄 정도였다.
멀미가 심한 나는 조수석이 지정석이 되었다. 운전하는 남정네들에게 간식을 잘 챙겨주는 것이 내 막중한 임무가 되었다. 모임의 회장이 3일 동안의 여행 일정표를 세부적으로 잘 짰다. 해외여행 일정처럼 식사 메뉴까지 기록해 놓아서 이번 여행이 짜임새 있게 진행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한낮에만 해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한계령을 지날때는 안개가 심해서 1m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다. 또 비가 거세게 쏟아지더니 시야를 가린다.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험난한 날씨를 뚫고 저녁 7시쯤, 펜션에 도착해서 안심이 되었다.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하게 되었다. 펜션 창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고 찰싹 찰싹 파도치는 소리가 귓가를 즐겁게 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요리사 보조도 되지 못한 나는 소라 껍질을 깠다. 일행 중 한명이 완도가 고향인데, 직접 완도 바다에서 따온 소라였다. 소라는 이쑤시개로 찔러서 천천히 돌려서 빼야 한다. 그런데 이쑤시개가 없다. 임시방편으로 일행이 나무젓가락을 가늘게 깎아서 이쑤시개로 만들어 사용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결국 클립을 펴서 소라 알맹이를 뺀 후 일행이 먹을 수 있도록 애피타이저로 준비했다. 요리사 부부가 동행했다는 것이 여행 내내 입을 즐겁게 했다.
첫째날, 저녁 식사는 한우 전복 스테이크이다. 요리사 남편은 한쪽에서는 한우, 전복 스테이크를 굽고, 요리사 아내는 사이드 메뉴를 만든다. 둘이 척척 환상의 복식조가 따로 없다. 그들이 챙겨온 큰 접시에 음식을 담고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스테이크를 잘라서 먹는데, 순간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눈과 입이 황홀해진다.
둘째날, 아침 식사는 묵은지 돼지고기 김치찜을 해먹었다. 지금껏 먹어본 김치찜 중에서 제일 맛있다. 아마도 낯선 여행지에서 좋은 사람들과 먹으니 그 맛이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다. 식사를 마친 후 설악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주차비를 별도로 내고, 신흥사 입구로 들어가는데, 입장료는 카드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고 써져 있다. 성인 3,500원씩 현금만 받는다는 것이다. 문화재 구역 입장료는 참 문제가 많다는 것을 언제나 느끼게 한다.
날씨가 화창하지 못해 전망을 시원하게 볼 수 없는 반면에 운무가 낀 풍경은 신비롭게 보인다. 매점에서 따끈한 커피와 달달한 호떡을 사서 벤치에 앉아 먹었다. 나는 사진 기사가 되어서 부부들끼리 얼싸안고 사진을 찍으라고 주문을 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하더니 나중에는 눈을 뜨고 볼수 없는 에로 영화를 찍는다. 모처럼 안아본다며 즐겁게 포옹을 한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호랑이 등뼈가 있다. 등뼈인 7번 국도를 타고 강원도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성까지 올라갔다. 통일전망대와 DMZ박물관을 찾아갔다. 어릴적에 책에서만 봤던 심리전단지(삐라)를 전시한 곳을 구경했다.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화진포 생태박물관도 구경하고 고성의 먹거리, 막국수도 먹었다.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살얼음이 얼었는데, 거기에 막국수를 말아서 먹었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다. 도토리 묵과 전병도 먹었는데 맛있다.
둘째날, 저녁 만찬의 시간이 되었다. 친구 남편의 야채 써는 솜씨가 리듬을 탄다. 손목 스냅이 남다르다. 요리가 예술이다.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것을 들었지만 보는 것은 처음이다. 대포항에서 떠온 오징어, 방어회, 전복을 넣고 복숭아와 갖은 야채를 넣어서 물회를 만들어 준다. 일단 회를 푸짐하게 먹은 후, 물회를 또 먹는다. 그런 다음 물회 국물에 메밀 소면을 넣어서 먹는다. 환상적인 맛이 된다.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이다. 식사를 하고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처럼 같이 샤워도 하고 잠자리에 누워서 새벽 2시가 넘도록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밤을 지샜다.
마지막날, 아침부터 태풍이 심하다. 낙산사 해수욕장은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만 차로 두바퀴 돌았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비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오리발과 스노클까지 챙겨갔던 물놀이 장비를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했다. 낙산사 해수욕장 입수도 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에 강원도 여행을 한번 더 하라는 뜻일 게다.
낙산사 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다음 여행의 계획도 세우며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섭씨 35도가 넘은 무더운 한여름에 10도 차이가 나는 시원한 여행을 강원도에서 만끽했다. 눈도 입도 호강한 여행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선물 같은 여름휴가를 보내게 되어 행복하다.
[38선 휴게소 앞에서]
[숙소 앞 수족관]
[설악산 케이블카/ 이것을 탔다]
[설악산 권금성 가는 휴게소에서/ 부부 한쌍 사진 찍기]
[화진포의 성(김일성별장) 가는 길목에]
[숙소 앞 바닷가]
[함께 꽃길만 걸읍시다]
[저 멀리 북한이 보인다]
[설악산 권금성에서]
[완도에서 공수한 소라/ 벗겨놓고 보니 이또한 예술작품]
[잊지못할 한우+전복 스테이크]
[돼지고기 묵은지 김치찜/ 호박잎]
[맛집/ 막국수 완전 맛있다]
[대포항에서 바로 떠온 모듬회/ 세프가 만든 물회]
2019. 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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