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17개, 국립공원등산

[17-15] 태백산, 주목(朱木)이 주목(注目)을 받다

순수산 2020. 5. 7. 12:47


[태백산 정상/ 1,560m]



20년 근무한 직장에서 6일의 긴 연휴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한다. 이 기회를 놓칠새라 한달 전부터 강원도 설악산과 오대산까지 가려고 계획을 세워뒀다. 그런데 국립관리사무소에 전화로 알아보니 봄철 산불예방 차원에서 정상을 통제한다는 말에 급실망의 되었다. 다행히 태백산 정상은 개방한다는 소식에 하루 전부터 배낭 2개에 준비물을 챙겼다.


태백산은 어떤 산일까? 기분 좋은 설레임이 생겼다. 기대도 되고 긴장도 되었다. 남편은 전날 새벽 230분에 깨서 뒤척이다가 내가 잠을 깰까봐 거실에서 누워있었다고 했다. 나도 평소에는 꾸지 않던 꿈을 꾸며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전라도에서 강원도까지 먼 여행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했나보다

 

백두대간의 중추인 태백산은 2016년 우리나라 2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태백산은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하여 누구나 오를 수 있으며, 겨울의 설경, 봄철의 진달래와 철쭉이 유명한 산이다. 천제단이 있는 영봉(1,560m)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봉(1,567m) 동쪽에 문수봉(1,517m) 또한 영봉과 문수봉 사이의 부쇠봉(1,546m)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은 함백산(1,572m)이다.


우리집에서 태백시 태백산국립공원 유일사주차장까지는 무려 398km 거리이다. 편도 운전시간만 해도 4시간이 넘는다. 남편 혼자 운전하고 간다는 것이 피곤할법도 한데 180km 속도를 내는 질주 본능의 사람이라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 코스가 아니라 산행 후 근처 찜질방에서 1박을 하고 주변 산책도 하며 여유를 가지고 다음날 돌아오자고 했다.


유일사주차장에서 천제단 정상까지는 4km이다. 왕복 4시간 정도이니 그렇게 힘들지 않는 산행코스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세상이나 이곳은 이제 봄이 막 시작하려고 한다. 가지에 새순이 싹틔지도 않았다. 이곳이 이렇게 높은 지대인가, 우리가 이렇게 멀리 온 것인가 구불구불 천천히 걸어가면서 신기해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원주에 사는 지인이 강원도는 5월에도 눈이 올만큼 춥다고 했는데 그 말을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사는 남쪽 광주광역시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떨어지고 잎이 무성하게 나온 것이 한달도 훌쩍 지났는데...


태백산은 주목(朱木)이 주목(注目)을 받는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주목이 눈에 자주 띄었다. 주목은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한국, 중국, 북동부, 일본 등이 원산지며, 우리나라에서는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고 했다. 나무의 껍질이 붉은 색을 띠고 목재도 붉은색이라 주목(朱木)이라고 한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나이가 오래가고 목재가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흙 한점 없는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면 그 꿋꿋한 생명력에 숙연해지는데, 빈껍데기만 남아 하얗게 말라버린 주목을 보니 울엄마의 깡마른 몸이 생각나서 순간 서글퍼졌다. 비록 늙고 힘겨워 땅의 영양분을 빨아들일 힘은 없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병상에 누워 계시는 울엄마 같아서 주목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1,557m)에 올랐다. 월출산처럼 기암절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령이 500년 이상으로 주목의 큰 군락지를 보는 묘미가 있었다. 태백산 하면 주목이 생각날 것이다. 거센 바람에 쓰러질 것 같아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태백산 표지석이 있는 천제단으로 더 걸어갔다. 천제단은 국가 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옛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꼭대기에 있는 큰 제단이다.


천제단 옆에 키 큰 정상석에는 한문으로 태백산이라고 써 있었다. 태백산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인증 사진을 찍고 천제단 쪽으로 가니 바람이 더 거칠게 불었다. 10분이나 있었을까, 남편은 하산하자고 벌써 재촉을 한다. 그렇게 먼 곳에서 새벽부터 출발했는데 정상에서 여유를 갖고 불어오는 바람을 더 즐기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내려가자고 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군봉 근처에서 간식을 먹고 유일사주차장에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사실 내 컨디션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라서 꿋꿋하게 산행을 감행했다. 근처 황지시장을 구경하고 시장 내에 조그만한 식당에 들어가서 옹심이와 감자부침개를 먹었다. 강원도에 오면 이 음식을 먹어야 된다면서 먹거리는 남편이 무엇을 먹을지 정해서 나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김치가 참 맛있는 식당이었다.


찜질방에 바로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우린 가까운 구문소를 찾아갔다. 황지에서 흘러나온 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고 있어 구문소라고 했다. 사진을 몇장 찍고 터널을 지나 공원 흔들의자에 둘이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그때서야 뻐근하게 온 마음에 가득차는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산행할 수 있는 모든 상황들이 감사했다.


태백에 오면 세계최초 안전체험 테마파크인 <365세이프 타운>에 꼭 가보려고 했는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을 하지 않아서 아쉽긴 했다. 1박을 하려고 찜질방에 주차를 하고 주변 산책을 했는데 또한번 놀랐다. 개나리와 벚꽃, 심지어 목련까지 활짝 피어 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신기해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다들 거기는 어디냐고 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그러나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말처럼 살려고 한다. 24시간 찜질방에서 저녁 7시부터 다음날 7시까지 12시간 동안 푹 잤다는 것이 신통했다. 아마도 태백산행이 좋았기에 마음 편하게 휴식을 취한 것 같다. 왕복 1,000km가 넘는 거리를 안전하게 다녀온 것도 감사하다. 어느 때쯤일지 모르지만 설악산, 오대산 산행이 기다려진다.





[관광안내 책자를 미리 받아서~]









[주목을 바라보며~]





[천제단, 바람에 날아갈듯]









[천제단]



[태백산 최고봉 장군봉/ 1,567m]


[4월 30일, 아직도 얼어있는 땅]




[구문소 공원 흔들의자에서]



[옹심이]


[4월 30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찜질방 주변 산책/ 벚꽃 길을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