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17개, 국립공원등산

가을의 무등산

순수산 2019. 9. 26. 16:22

 

[무등산 서석대 정상]

 

 

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소중한 시간을 귀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산에 오르기로 한다. 오늘은 무등산이다. 산행하는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등산의 여정 속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설레인다.

 

등산의 시작점인 원효분소로 가는 도로에 우거진 나무 터널 숲이 나온다. 씽씽 달리는 차안에서는 소진영 가수의 <오직 예수뿐이네>라는 찬양이 울러 퍼진다. 큰소리로 남편과 합창을 한다. 열어 젖힌 창문에서 향긋한 바람이 들어온다. 창밖으로 손을 뻗어서 바람을 어루만진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봤던 자동차 광고를 찍는 기분이다.

 

무등산 옛길 코스는 서석대 정상까지 3.9km의 거리가 된다. 산행 입구에서 남편은 등산화 끈을 조이고, 나는 땀 흘리기 전, 얼굴을 셀카로 찍는다. 졸졸졸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한걸음씩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걸으면서 여러 생각에 잠긴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아들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산할 때 무릎이 씨큰거리고 아픈데 나는 언제까지 산에 다닐 수 있을까? 요즘 갱년기로 화를 참지 못하고 불쑥 거친 말을 쏟아내는데, 혹시 내 말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은 없을까? 병상에 계신 친정엄마의 건강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내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결단과 다짐을 하게 한다. 남편도 터벅터벅 걸으면서 나처럼 여러 생각에 잠기겠지.

 

소박한 들꽃의 손짓 때문에 가끔씩 걸음을 멈춘다. 오늘은 물봉선화, 며느리밑씻개꽃, 여뀌를 만났다. 물가에 핀 봉선화라고 해서 물봉선화라고 부른다. 9월에 자주 볼수 있는 예쁜 꽃이다. 며느리밑씻개꽃는 며느리들의 부인병 치료에 탁월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여뀌는 오래 전에 읽었던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에서 만났다. 이름 없는 들꽃에 지나지 않았던 꽃들이 이름을 알게 되고 호명하면서 그 꽃들은 내 마음 속으로 소중하게 들어왔다.

 

"산에 올때마다 힘들긴 해." 연세 지긋한 등산객이 헉헉대는 숨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동행한 친구한테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힘들다는 산행을 나는 왜 할까? 답은 간단하다. 비록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산행을 통해 맛볼수 있기 때문이다.

 

옛길은 숲이 우거져서 오르는 내내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한여름에는 태양을 가려서 시원하나 오히려 숲 때문에 답답하기도 하다. 목교 쉼터에서 간식을 먹는다. 추석 다음날이라 배, 사과, 흑도라지 정과, 군 계란, 커피 등 가방에서 꺼내 놓고 보니 한상이 차려진다. 산에서 먹는 간식은 다 맛있다. 이것이면 행복이지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산에 있으면 모든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목교에서 서석대 정상까지는 500m가 된다. 한걸음씩 걸어서 약 4Km가 되는 정상에 올랐다. 새삼 착실하게 걸어준 내 다리에게 고맙다. 산행은 욕심 버리기이다. 그리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자주 되새기게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예술작품이다. 탁 틔인 시야도 좋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정상에 왔으니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다.

 

산에 오르는 도중에 혼자 걷는 여자 등산객과 함께 걸었는데, 정상에서 다시 만났다. 그 여자에게 정상석을 붙들고 서 있는 우리부부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리가 길게 나오게 찍어준다. 품앗이를 하려고 사진을 찍어드린다고 했더니 “자주 와서 굳이 안 찍어도 됩니다. 이런 돌이 뭣이 중한디요.”라며 인생의 고수 같은 말을 툭 던진다. ‘나 여기까지 와봤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증거사진을 남기곤 하는데 이런 생각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상에서 보는 가을 하늘이 청아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수를 놓았다. 하얀 솜사탕같은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자연 속에 나를 내버려 둔다. 하늘을 보고 느끼고 감탄하다 보니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무릎이 씨큰거리며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행복을 정상에서 느낀다. 하산은 등산보다 쉽긴 하다. 그러나 산에 오르면서 체력소모가 컸기에 긴장을 놓치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넘어질수가 있다. 앞을 보며 또박또박 잘 걸어야 한다.

 

등산은 인생과 닮은 점이 많다. 산에 오를 때는 심장이 터질 듯이 힘들다가도 내리막을 만나면 발걸음이 가볍다. 산행을 통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낀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가 불어오는 바람 한 점에 행복하다. 오늘같은 가을 하늘이 내게 큰 기쁨을 준다.

 

세상은 많이 가진 자를 부자라고 한다. 산에서는 배낭이 가벼울수록 인생의 고수라고 말한다. 뚜벅뚜벅 걸어야 하는데 짊어지는 짐이 많으면 롱런할 수 없다. 하여 산에 가면 소소한 행복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감사하는 삶을 만들어 가기에 힘들어도 산행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옛길 초입/ 등산화 끈을 조이며~]

 

 

[땀 흘리기 전에 인증샷 찍기]

 

 

 

[혼자 올라가는 남편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나는 오른다]

 

[며느리 밑씻개 꽃]

 

 

 

 

 

 

 

[정상에서 광주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멋져]

 

 

[들꽃이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한다]

 

 

 

 

[서석대 전망대]

 

 

 

 

 

 

 

 

2019. 0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