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천황봉 정상 / 809m]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지 한달째 되어간다. 될수 있으면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보내려고 애쓰고 있다. 워낙 활동적으로 돌아다녔기에 ‘집콕’의 생활이 힘들긴 하다. 독서도 하루 이틀이지 고립으로 우울증이 생길 판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힐링을 얻고자 월출산으로 떠났다.
산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지만 나 홀로 산행은 하지 않는다. 남편에게 등산을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다른 집 같으면 남편이 아내한테 간청하는데, 우리집은 어째 반대다. 마지못해 응해준다는 것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은 완전 험한 산인데, 두 번 다시 산에 가자고 말하지 못하게 힘든 산을 말한 것 같다.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다 백배는 낫겠다 싶어서 산행 가방을 서둘러 쌌다.
국립공원 월출산은 고지가 809m이다. 소백산맥 여맥의 말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도갑산(道岬山:376m)과 월각산(月角山:456m)과 장군봉(將軍峰) 등이 있다. 남원의 지리산, 장흥의 천관산, 부안의 능가산, 정주의 내장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에 속한다. 이 산 중에서 능가산만 아직 가보지 못했다. 월출산은 손에 꼽을만큼 험한 산이다. 산에 오를 때 ‘악’ 소리가 날만큼 악산이다.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말한다. 그래도 기암절벽으로 어딜 봐도 사진 각이 나오는 매력적인 산이다.
월출산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처음 가봤다. 그때는 한창때이고 친구들과 마냥 좋아서 그렇게 힘들게 느끼지 못했다. 그 뒤로 2008년에 지인과 한번 더 다녀오고 2011년 6월에 가족 셋이 구름다리를 거쳐서 천황봉까지 올라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흐른 줄 몰랐다. 힘든 아들을 달래며 구름다리에 오르고자 끙끙대며 올라갔던 것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번 산행 코스는 구름다리 쪽이 아닌 경포대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자고 했다. 경포대삼거리 – 바람재삼거리 – 남근바위 – 천황봉 정상까지 올라갔다. 하산은 통천문삼거리 – 경포대삼거리로 내려왔다. 왕복 6.2km 거리였고, 산행 시간은 5시간으로 비교적 무난한 코스였다. 생각보다 가볍게 하산을 했고 오후 2시 경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근거리 관광지로 구경 가려다가 자중하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3개월 만에 오른 산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얼마나 좋던지 물 만난 고기처럼 팔딱팔딱 뛰어서 올라갔다. 햇살은 있지만 산의 공기는 아직도 찼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고 답답한 생활을 했기에 산에서 만큼은 과감히 벗어던져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감기에 걸린다며 제발 마스크를 쓰라고 말 안듣는 딸에게 야단치듯 한소리 했다.
월출산은 만물상을 보는 듯 볼거리가 많은 아름다운 산이다. 우리나라 산이 세계적으로 월등히 멋있다는 것을 이 산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마의 철계단을 거쳐서 구름다리 코스로 갔었을 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산행을 고집하는지 후회할 때도 있었다. 2011년 월출산에 갔을 때 두 번 다시 월출산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산이 그리워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 동백나무도 제법 큰데 꽃은 한 송이씩만 달려 있다. 미끈하게 뻗은 동백꽃 가지는 목욕을 막 끝낸 여인네의 살결 같다. 산죽 이파리가 바람에 나부끼며 쓰르륵 쓰르륵 속삭여 준다. 윙윙 시원하게 부른 바람이 내게 안부 인사를 건넨다. 따사로운 햇살도 반갑고, 돌돌돌 흐르는 계곡물 소리도 경쾌하다. 어릴 적에 아빠가 사주신 종합선물셋트를 월출산에서 다시 받은 기분이다.
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가진 보랏빛 얼레지를 만났다. 전혀 예상지 못한 분홍 진달래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왔다. 바위 틈에서 흐른 물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그 추위도 이겨내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해낸 꽃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산행은 주로 남편과 둘이 다니기에 밋밋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즐기는 코드가 잘 맞는다. 연출하여 사진도 많이 찍기에 무료할 틈도 없다. 3단 폭포에서 폭포수가 입으로 들어오게끔 사진을 찍는다. 남편이 사진을 찍으면 나도 재미삼아 따라서 해본다. 남편은 “얘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마신다니까.”라며 철없는 아내를 타박하며 웃는다.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리는 유머러스한 남편을 보면서 힘든 산행은 웃는 산행이 된다.
그래도 우리와 동행할 수 있는 있는 부부 한쌍이 있으면 참 좋겠다. 산행을 할때마다 물색을 해보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남편이 산행을 좋아하면 아내는 산행에 질색이고, 부부가 산행을 좋아하면 남편이 주말에 근무라서 안되고, 산행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처럼 코드가 잘 맞는 부부도 흔치 않다.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산에 오를때마다 고은 시인의 <그 꽃>이 생각난다. 시인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산에 오르면 천천히 오르기에 꽃을 보고 사진도 찍게 된다. 내 산행기의 사진은 주로 등산때 찍은 것이다. 오히려 하산할 때는 긴 산행으로 몸이 지치기도 했거니와 피로감에 만사가 귀찮아서 오히려 꽃을 볼 여력이 없다.
잘 사는 법이 있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먼 훗날, 다리가 후들거려서 좋아하던 산행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럴 때 미래의 내가 젊었을 때의 나에게 추억할만한 우리나라 산행 기록을 많이 남겨줘서 고맙다고 하지 않을까. 미래의 내가 더 고마워하게끔 가슴이 설레일 때 산행을 더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2011년 06월 가족 셋이/ 9년 전의 모습이다.]
[2011년 6월 구름다리 위에서]
[3단 폭포에서 이런 연출 해본다]
[따라쟁이 나도 해본다]
[혼자 앞만 보고 열심히 걷다가 셀카놀이]
[정상까지 얼마쯤 남았을까~ 보면서 힘을 내자]
[어떤 등산객한테 사진을 찍어주라며 핸드폰을 건네드렸더니 그분이 바닥에 떨어뜨려서 스크래치 발생 흑흑]
[어딜봐도 사진각이 나온다. 황홀한 풍경]
[큰바위 얼굴 따라해보기]
[큰바위 얼굴 꼭대기에 등산객이 서있다]
[흰구름을 배경삼아]
[돼지바위 똑같다]
[바위 아래 이렇게~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때 이 바위에서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바로 생각 났다]
[한사람만 겨우 통과할 수 있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에서]
[몹시 날씨가 추웠는데, 그래도 깨끗한 경포대 계곡이 좋아서~]
[여름에 꼭 다시 오자]
[지압이 되는 족욕장]
[으라차차 바위 들어 올리기]
[남근바위, 이곳을 통과하는데,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던지 겨울 중에 겨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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