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화단의 금목서]
내 안위가 불안하다. 요즘 나를 바라보는 주인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언제라도 나를 떠나보내려는 마음이 보인다. 나는 주인장이 좋은데 주인장은 내가 늙어서 이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며칠 전 달리다가 도로에 어쩌자고 서버렸는지 그것이 주인장의 마음을 노여워하게 만들었다.
내 이름은 옵티마다. 이름만 불러봤지 정작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옵티마(optima)는 최적(optimum)의 복수형으로 가장 적당하고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더도 덜도 아닌 가장 온전하다는 깊은 뜻이 있다. 그 이름값을 하면서 살려고 한평생 열심히 살았다.
주인장에게 주민등록증이 있듯이 나에게는 차량등록증이 있다. 2003년도에 태어났으니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간의 수명으로 따지면 70대 노인 축에 속한다. 주인장은 내가 튼튼하고 가볍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또한 비싼 휘발유를 먹지 않고 엘피지를 먹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한 달 내내 씽씽 달려도 5만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 그만큼 주인장은 검소하신 분이다.
주인장은 천하장사다. 출근할 때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 나간다. 보통 4개의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평소 백팩과 보조가방, 수영 비닐가방, 수영 속옷가방까지 들고 나간다. 수영이 끝난 후 교회 셀모임이 있는 날에는 성경책을 담은 가방까지 들고 나선다. 또한 친정엄마가 계신 병원에 가는 날은 간식 가방까지 들고 나선다. 마트에서 시장까지 본 날에는 8개의 가방을 들고 귀가한다. 아마도 주인장에게 내가 없었다면 해낼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항상 곁에 있어서 믿고 의지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방의 무게를 짊어지고 뚜벅뚜벅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마음 한 켠이 짠하다.
너무 바쁘게 사는 주인장이 때론 미울 때도 있었다. 태풍 13호 ‘링링’이 부는 날에는 정말로 속상했다. 조금만 일찍 귀가했어도 안전한 지하 주차장에서 편히 쉴수 있었는데, 밤 11시쯤에 귀가한 주인장 때문에 지하 주차장에는 내가 쉴 자리가 없어 결국 지상 주차장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날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찌나 강한 바람이 온몸을 후려쳤던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비몽사몽 헤맸던 가슴 아픈 날을 나는 기억한다.
주인장 가족은 남편과 아들까지 셋이다. 각자 자가용이 있어서 차량도 셋이다. 어느 날 아파트 주차장에 우리차 세대가 나란히 주차된 것을 보고 주인장은 흐뭇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한 집에 가족 셋이 오순도순 살 듯이 우리 차들도 그날 함께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러 해를 함께 살았지만 주인장이 욕설을 한 적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최고로 거친 말을 했던 날이 기억난다. 눈이 소복히 내려서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날이었다. 퇴근 길에 약간 내리막의 도로에서 본의 아니게 앞차와 살짝 입맞춤을 해버렸다. 접촉사고가 아니라 그야말로 스위트한 입맞춤이었다. 당황한 주인장이 내려서 입맞춤의 흔적을 앞차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1mm도 찾을 수 없었다.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 앞 차 운전자가 뒷목을 잡고 내렸고, 병원에 입원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수년 동안 지켜봤던 우리 주인장을 알기에 앞 차 운전자에게 내가 대신 쌍욕을 해줬다.
그래도 우리 주인장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훨씬 많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 항상 좋은 냄새를 풍기고 깨끗하게 나를 사용해서 좋다. 아파트 한 채 값을 호가하는 외제차가 음전운전으로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날 어떻게 될지 모르는 험난한 세상에 나처럼 늙음을 마주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하여 노인이 되었다는 것은 건강관리를 잘 유지했다는 뜻이고 행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장과 함께 보낸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러나 이제 헤어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나는 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예전같이 않아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기에 장거리 여행이라도 떠날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관절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다.
주인장이 나와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인지 나는 알고 있다. 매주 수요일에 학교로 공부하러 가는 주인장은 일찍 주차장에 도착한다. 강의시간까지 40여분 동안 차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알람을 설정한 후 음악을 들으며 곤히 잠을 자는데, 아마도 그 시간이 마음 편하게 나와 함께 보내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아가처럼 새근새근 꿀잠을 자고 있는 주인장을 보고 있노라면 따스하게 위로해주고 싶어진다.
인간은 자신의 생애와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는 자서전을 쓴다. 그렇게 나도 한평생 살아왔던 기록을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때론 우쭐했고 힘들기도 했고, 하루하루 의미가 있던 날도 많았다. 태어나서 가는 날까지 주인장 잘 만나서 요절하지 않고 먹을만큼 나이 먹어서 가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지막 날 ‘주인장님,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어 저는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눈을 감고 싶은 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다.
마지막 그날까지 안위를 책임질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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