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화단에서 핀 살구꽃]
세 달 동안 평일에 40분씩 버려졌다. 하루에 40분이면 많은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한달에 20여 일을 곱하면 대략 800분이 된다. 여기에 세 달을 곱하니 2,400분. 시간은 무상으로 공평하게 살아있는 자에게 준다.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얻는다면 아마도 허투루 막 쓰지는 않을 것이다. 증발해 버린 내 시간은 대체 어디에서 되찾을 수 있을까.
추위가 원인이었으리라. 따뜻한 이불이 자꾸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추울 때는 따뜻함이 제일 아니던가. 아침밥을 먹는 시간에 잠을 잤다. 물론 새벽 6시 알람이 울어대면 일어난다. 남편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기 위해서다. 된장국도 데우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서 식탁에 차려준 후에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40분 동안 또 잔다.
겨울이니 추운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아마도 갱년기가 큰 이유였으리라. 오십이 넘은 어느 날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가기 싫어졌다. 30년 동안 직장인으로 잘 살아왔는데 갱년기라는 놈이 한순간에 내 신념을 묵살해버렸다. 언제까지 출근하는 삶을 살아야 하냐며 내 안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며칠 전, 두 번째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려고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유난히 눈에 부시었다. 따뜻한 봄이 왔다고 알리는 것 같았다. 누워있던 내가 어찌나 한심하던지. 선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비록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깨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자고 다짐한다. 신뢰하지 못한 나를 대면할 때마다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한 마음이 들때는 매일 열심히 사는데 그깟 40분 더 잔다고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라며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덥석 잡아버린다.
40분을 더 잔다고 해도 매일 계획대로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남편의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6시 30분에 다시 잠을 자서 7시 10분에 일어난다. 세수하고 양치하고 화장하며 출근 준비까지 딱 10분이면 된다. 출근하라는 7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30분 동안 독서도 하고 일간지도 읽으며 여유있게 시간을 활용하기에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밥 식사하는 대신에 잠을 선택해서 좋은 것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과식을 하지는 않지만 원래 끼니를 거르지 않기에 출근해서 먹으려고 군 계란과 과일을 챙겨서 간다. 아침밥을 3개월 동안 먹지 않으니 뱃살이 그나마 덜 나온 느낌이 든다. 사실 확실한 다이어트 는 잠을 자면 된다. 잠 자는 동안에는 먹지 않으니까.
아침형 인간, 남편에게 이런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내가 자는 것에 대해서 개똥철학을 늘어 놓으면 어쭙잖게 생각한다. 아들은 아들 방에서 마누라는 안방에서 잠을 자는 동안 남편은 혼식한 후에 깨끗하게 설거지를 해둔다. 맞벌이로서 나는 먹지 않더라도 27년 동안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마누라와 산다는 것은 남편의 자랑이 될 것이다. 그러더라도 가족의 배웅도 없이 쓸쓸히 출근하는 남편을 생각하니 뭔지 모를 짠한 감정이 든다.
가득 차면 넘치기 마련이다. 매번 잉여 잠으로 게으른 나를 직면하다가 더 이상은 버틸 면목이 없어졌다. 하루의 40분을 잠으로 버리지 않고 찾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누가 나를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나를 믿어주고 신뢰하는 것이 급선무다. ‘잠은 무덤에서 족하다’라며 늘상 말해 놓고 게으름에 참패 당한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2020년 03월 25일 오늘. 내게는 역사적인 날이다. 새롭게 마음을 먹고 기록을 남긴 날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어서 육신이 썩자마자 사람들에게 잊히고 싶지 않다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쓰든지, 글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이 명언 중에 한 가지는 실천하는 날이다.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나 온열매트의 코드를 콘센트에서 당차게 뽑았다. 바로 이불을 개키고 세수를 해버렸다. 주방으로 나가서 20분 동안 남편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식탁에 차려줬다. 그런 다음 20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했다. 7시가 되어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가서 깊게 포옹도 해줬다. 남편이 슬며시 미소를 건네며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나선다.
출근하기 전까지 독서하고 일간지를 읽는 것은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그러나 똑같은 루틴도 어제와 오늘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잃어버린 40분을 찾은 날이기 때문이다. 되찾은 40분을 두 번 다시 놓치지 않도록 꼭 붙잡아야겠다. 죽어 있던 40분을 깨워서 매일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자. 또는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생각만 해도 흐뭇해서 웃음이 나온다. 큰 일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배움은 깨달음이다. 내게 힘을 더해 줄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실을 대면하자 소름이 돋았다. “매일 아침 잠자리를 정돈한다는 건 그날의 첫 번째 과업을 달성했다는 뜻이다. 작지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을 해내야겠다는 용기로 발전합니다.”라고 팀 페리스가 쓴 [타이탄의 도구들] 책의 한 대목을 읽다가 무릎을 탁쳤다. 그래 나는 오늘 엄청난 일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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