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9. 21. 맑고 화창한 날 그러다가 죽을뻔한 날
오늘은 무등산 바람재로 놀러갔다.
가을 하늘이 무척이나 맑고 푸르딩딩했다.
바람은 산들산들 가만히 있어도 내몸을 흔들었다. 햇살도 따사롭고 코끝을 간질간질거리는 바람 때문에 낮잠이 왔다.
멀때처럼 자란 참나리꽃에 자리를 잡고 한숨 달게 자고 있는데,
어디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저 잠자리 잡아줘”
“알았어 잠시 기다려봐”
순간 잠은 확 달아나고 내 날개는 무식하게 생긴 인간의 손에 붙들렸다.
가을나들이 나왔다가 이제 죽었구나. 엄마가 놀러 갈때는 항상 조심하고 특히 잠잘때는 눈을 비스듬히 뜨고 자라고 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죽었다. 죽었어.
“빨간 잠자리가 신기하게도 생겼네”
“자세히 관찰해봐 이쁘지”
인간들은 이상해 좀 이상하게 생기고 좋은 것 있으면 뭐든지 꺽어버린다니까. 이쁘면 그대로 놔두고 관찰하면 어디가 덧나나. 우리목숨 귀한지도 알아야지 이제 어떻게 될까?
며칠전에도 친구가 불쌍하게 죽었는데......
아이는 나를 요리저리 살피더니 아빠에게 얘기한다.
“아빠 또 하나 잡아줘 두 마리 쌈 시키게”
“찾아보고”
한참 잠자리를 찾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러면 그렇지 내 친구들을 이렇게 죽이니 눈으로 찾기가 힘드는게 당연하지.
“아빠 이제 그만 놔둘래. 꽃보러 가자”
“그래 그러면 잠자리 날려 보내렴”
인간은 내 날개를 놓았다.
기진맥진 힘은 빠졌지만 정신을 벌떡 차리고 있는 힘 다해 날아갔다.
정말 황천길에 갔다가 살아나온 기분이다.
하지만 두번 다시 인간들이 많은 무등산 바람재를 가지 않을거야. 인간들은 정말 싫다 싫어.
잠자리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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