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제2의고향 가거도

순수산 2005. 12. 24. 10:35
 제2의고향  가거도(可居島)


도시에서 태어나 줄곧 성장해왔던 나는 고향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면 정지용 시인의 ‘향수(鄕愁)’가 먼저 그려진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아′


적어도 고향이라면 이정도는 되어야지 싶었다.  그러나 상상속의 고향은 실제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도에서도 찾기 힘든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 ‘소흑산도의 가거도’사람이 가히 살 수 있다고 하여 가거도라 부르며 그곳엔 기암괴석과 후박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박나무 껍질은 한약재로 이용되어 섬사람들의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제2의 고향인 시댁을 가게 되었다. 8년전의 일로 기억된다. 광주에서 가거도까지 가는데 고속버스, 쾌속형배, 큰배, 작은배를 갈아타고 하루가 꼬박 걸려서야 도착했다.


난생 처음 타 본 날개달린 쾌속형배는 바다 물살에 둥 떠서 내려앉기를 반복하며 놀이기구 바이킹을 연상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바이킹에 몸을 실은 듯 함성까지 지르며 무척 즐거운 표정들이였다. 하지만 나는 배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 심한 멀미에다가 아찔한 바이킹의 느낌까지 들고 나니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2시간동안 진이 다 빠졌다.


흑산도에서 갈아타는 통통통 뱃고동을 울리는 큰배는 끝없는 바다를 무료하게 4시간을 달리더니 가거도1구에 도착했다. 시댁은 가거도2구라 다시 작은배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렸다.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로 부서지는 파도에 여러번 부딪치다보면 다리와 팔에 하얀 염분이 쌓인다. 쪼그라진 배를 움켜잡고 마지막 노란 위액까지 쏟고나니 탈진상태가 되었다. 끝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 목적지를 향해 쉼없이 질주하는 배는 유약한 나를 싣고 나의 몸무게를 무려 5킬로그램이나 뺀 후 섬에 도착했다.


내 발이 먼저 섬에 닿는 순간 ‘아! 살았다. 육지다’라며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어릴적 친구들과 처음 떠났던 여행이 생각난다. 여행의 낭만을 건지기 전에 낯설은 풍경에 긴장과 무서움이 몰려와 괜한 후회가 먼저 들었던 기억과 귀가길이 가까울 때쯤 익숙한 시내버스의 번호만 보아도 눈물이 왈콱 쏟아질만큼 반가왔던 평온한 느낌은 꼭 내 엄마의 품처럼 아늑했고 분명 바다위가 아닌 내 발이 닿는 섬에서의 느낌과 비슷했다. 거리가 멀어 목포집에서 부모님을 상봉하지만 진짜 고향을 찾는 맏며느리의 꼴이 말이 아니였다. 호랑이굴에 가더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는데 아무리 멀미가 심할지언정 정신력으로 버티면 될텐데 난 정신력이 부족한 사람일까 괜한 자격지심까지 들었고 이렇게 고향이 먼 사람과 산다는 것이 순간 슬퍼졌다.

나의 고향길은 고행길 그자체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짝꿍이 신안군이 고향이라며 집에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린다고 했었다. 하지만 광주 토박이인 나는 그 거리가 어느정도인지 실감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곳이 나의 시댁이 될줄이야......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그 쓰라린 고행길을 통해 얻어지는 달콤함은 잊을 수 없었다. 섬 꼭대기에 있는 시댁은 창문만 열면 탁 트인 바다가 여과없이 몰려 들었고, 해가 질 때면 너울지는 노을에 온 집안이 붉게 물들었다. 물이 맑아서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고, 초록색의 섬을 안개가 감싸고 있는 전경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어디에서나 신선하고 위대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름답게 보존된 만큼 불편한 점도 많아 그곳에서 살아가는 부모님은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라 날씨라도 궂은 날이면 섬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고, 물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태풍이 불면 생계를 위한 배조차 띄울 수가 없었다. 섬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듯 싶었다.


또한 섬사람들은 모진 풍파에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인지 늘 강하고 강하다보니 억센감도 있었다. 물론 주변 환경이 말해주겠지만 타지와 고립되어 살다보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듯 소란스러운 일도 간혹 빚어졌다.


하지만 난 그곳을 직접 가 보고서야 부모님이 왜 그 작은 섬을 떠나 자식들이 있는 도시로 오지 않는지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부모님만 남겨두고 섬을 떠나 올때는 마음이 아렸는데 자연의 순리대로 정직하게 살고 계시는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은 것이 좋아졌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그후로도 몇번 심한 멀미에 죽어도 절대로 다시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은 늘 나를 마음 따뜻하게 안아준다.


중국에서 우는 닭소리가 들린다는 가거도는 분명 나의 고향이다. 별명이 물개인 남편이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고 소라를 따와 가족과 함께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선명하고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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