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수박예찬

순수산 2005. 12. 24. 10:50
 

수박 예찬


수박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여름’하고 외치면 친구처럼 떠오르는 단어가 수박이다.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이요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한다. 과일가게에서 마트 앞 진열장에서 수박만큼 탐스러운 과일도 없을 것이다. 연일 무더위 속에 기진맥진 살다가 수박이 생각나 퇴근길에 마트에 들렸다. 수박은 팔천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큼직하다. 제일 맛있을 것 같은 수박을 골라 들어보니 너무 무거워 허리가 펴지지 않는다. 계산을 하고 잠시 후에 먹을 수박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배달 되어 온 수박을 머릿부분을 자르고 가로로 반을 잘랐다. 보기에도 황홀한 빨간 단면이 두 개로 되더니 피식피식 흘러 나오는 과즙이 달착지근하다. 아이가 먹기 편하게 큰 수박을 팔각모양으로 잘라 박스에 넣으니 네 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얼른 수박 조각을 입에 물고 깨물었다. “쏴~아” 입안 가득 행복이 퍼진다. 수박에 얽힌 추억들이 떠오른다. 

 

모깃불을 태우며 여름밤 평상에 둘러 앉아 가족과 함께 수박을 먹었던 기억. 특히 머리만 자르고 각자의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 먹고 껍질만 남은 수박통을 철모로 만들어 멋진 군인행세를 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여름철 물놀이 갈 때 꼭 챙겨가야 할 과일이 수박이다. 수박을 시원한 계곡물에 담가 두웠다가 한참 놀고 난 후 바위에 걸터 앉아 주먹으로 깬 수박을 먹었던 기억. 또한 반달 모양으로 수박을 잘라 ‘수박 빨리 먹기 대회’를 개최하면 얼굴 가득 웃음이 퍼지고, 얼굴 가득 수박 맛사지를 하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마음이 먼저 가는 친척집이나 친구집을 찾아갈 때 무엇을 사 가지고 갈까, 고민하지만 수박 한 덩어리 ‘턱’하니 들고 가면 적은 비용으로 폼낼 수 있다. 받는 사람 부담스러워 하지 않아 기분 좋고, 거실에 둘러 앉아 수박 쪼개 먹으며 나누는 담소는 달디 달다. 땀에 흠뻑 젖어서 놀고 들어온 아이를 위해 수박화채를 만들어 준다. 유리 그릇에 깍뚝 모양의 수박을 썰어 담고 얼음을 적당히 넣어 섞어주면 아이는 대만족 한다. 사근사근 수박 씹는 소리와 오도독오도독 얼음 깨지는 소리를 듣다보면 내 기분도 덩달아 시원하다.

 

이렇게 맛있는 수박을 먹다보면 꼭 감사할 분들이 떠오른다. 정성 들여 수박을 재배하신 분들게 고맙고, 무사히 우리집으로 배달 해 준 마트 청년한테도 감사함을 전한다. 설탕처럼 너무 달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처럼 심심하지도 않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오묘한 맛에 나는 유혹 당한다. 오늘 저녁 수박에 한 번 빠져 봅시다.


200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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