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가족의 평화통일

순수산 2005. 12. 24. 10:54
 

가족의 평화 통일


  “아빠, 평화통일에 대해 숙제를 해야 하는데요. 좀 도와주세요.”

  “그래, 한번 생각해 보자. 평화통일이라…….”

  “아들, 요전에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본 것 기억나지.”

  “예. 아직도 무서운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요.”

  “전쟁이란 그렇게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치유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단다. 우리나라는 잠시 전쟁을 쉬고 있는 휴전상태이지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기에 통일을 바라고, 특히 평화적인 통일을 꿈꾼단다.”


거실에서 부자지간에 나누는 얘기들이 퍽 진지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녀석의 숙제가 요즘 들어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과서 숙제는 혼자 하게 하더라도 자료 찾아보고 서로 토의하며 결론을 지어야 할때는 부모의 생각이 전해지기 마련이다. 맞벌이 가정이라 아이가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할때 제때 풍족하게 돌봐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음은 의욕으로 꽉 차 있는데 정작 퇴근하고 저녁식사 준비하고 책 좀 읽고 나면 시계는 새벽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간혹 내주는 이러한 숙제를 짜증내지 않고 성심껏 도와준다. 당연히 늦은 시간까지 세 가족은 많은 얘기를 하게 된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보며 남편은 아이에게 뉴스 브리핑을 해준다. 아이 또한 소년신문을 보면서 개략적이지만 세상 흐름을 읽고 있다. 아이는 특공무술 도장만 다니고 부족한 공부는 남편과 내가 도맡는다. 학교 수업에 억매이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시야를 갖을수 있도록 인터넷보다 신문을 많이 활용한다. 집에서 가까운 산에 갈 때 우리는 1주일 분의 신문을 들고 간다. 돗자리 깔고 들어 누워 남편 목소리 아들 목소리 내 목소리로 읽어가는 세상사는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아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챙기는 것은 필수다.

 

신문을 많이 읽고 하루에도 쉼없이 책을 읽어서일까, 남편은 평화통일에 대해서 거침없이 아이와 함께 대화한다. 내 부모세대가 전쟁을 겪었지 사실 우리네는 전후세대이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고 고통스럽다는 것도 간접적인 체험에서 얻은 것이다. 6.25전쟁에 대한 진상을 대중매체나 영화, 책에서 얻어낸 단편적인 것들이다. 예전에 친정어머니가 말씀하셨는데 “내가 10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전쟁이 터저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해 피난을 다녔다.”고 했을 때에는 무슨 전쟁영화의 한 대목을 얘기한 것처럼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인류의 악마라고 생각된다.   

 

다음날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보니 식탁에 눈에 익은 예서체의 글이 있다. 연애 때나 보았던 남편의 필체이다. 내가 집안 일을 하는 동안 같이 하지 못했던 평화통일 숙제를 남편은 아이와 함께 의견을 주고 받으며 글쓰기 작업을 마친 것이다. 글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남편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옆에 그 아빠의 아들인양 깔끔하게 정리된 A4 용지의 프린트물이 있었다. 아빠의 글을 기본 바탕으로 영화에서 보았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쓴 모양이다. 아이는 어려운 말을 잘 모르니 쉽게 풀어 썼고 아빠의 영향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았다. 두 작품을 품평해주라는 의미로 살며시 식탁에 놓아둔 것 같다. 다음은 아이의 글 <전문>이다.


  아빠께서 우리나라 6․25 전쟁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고 해서 “태극기 휘날리며”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았다. 전쟁에 대하여 책에서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는 더 심하고 잔인하게 보여줬다. 전쟁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가 약하기 때문에 같은 민족과 형제끼리 서로 싸워 죽여야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슬펐다. 만약 내가 내 동생과 서로 싸워 죽여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슬픈 일인지 모른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에 전쟁은 일어났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남쪽으로 처들어왔다. 전쟁은 1953년까지 3년동안 계속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마을을 떠나야 했다. 어린 아이들도 눈보라 속에서 불쌍하게 피난을 가야했다. 그때 피난을 가지 못했던 가족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휴전이 된지 5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이산가족”이 생겼다. 서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예전에 TV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보여주웠는데 서로 못 만난지 오래되어 찾던 가족이 죽었거나 아니면 너무 나이가 들어 알아보는데도 한참 걸렸다. TV를 보는 사람들은 같이 울 수 밖에 없었다.  전쟁은 얼마나 끔찍한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행방불명이 된다. 도로, 항만, 산업시설, 주택 등 무엇 하나 성한 것 없이 처참하게 부서진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내 나라 살리는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짜 바라는 통일은 “평화통일”이다. 내가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이 피땀 흘려 우리나라를 가꾸어 놓고, 나라를 열심히 지키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전쟁으로 모든 것을 망칠 수는 없다.

 

  이제는 지나버린 과거의 아픔을 마음에 담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위하여 슬기롭게 통일을 이루어가야 한다. 두꺼운 철조망으로 한반도의 허리가 잘라졌는데 깨끗하게 걷어내고 푸른 들판에 잔디를 깔아 남쪽 아이들과 북쪽 아이들이 함께 축구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남과 북이 합체 변신하는 평화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세계에서 힘있는 국가가 되고 우리나라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어른이 된 그때에도 평화통일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내가 통일을 하는데 앞장 설 것이다. 그래서 내 가족, 우리 사회,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게 “세계 속의 빛나는 한국”을 만들고 “세계를 이끌어가는 한국”을 만들 것이다. 한국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나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될 것이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자랑스런 한국인이 된다는 아이의 마무리 글을 통해 두 남자들이 어떤 얘기들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군대를 가지 않았던 여자인 내가 이해하기는 좀 힘들겠지만. 아울러 이 나라의 남자들이 무척 늠름하고 자랑스러워졌다.

 

전쟁은 이 땅에서 정말 사라져야 한다. 한민족끼리 얼싸 안고 웃을 수 있는 평화통일을 꼭 이루어야 한다. 아이의 숙제로 인해 ‘나’라는 개인을 ‘우리’라는 사회를 ‘한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해 봤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기에 우리가족은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또한 세계 속에 한국이 경제, 문화, 사회, 안보 등 이 정도의 위상을 갖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세대인 우리들은 그분들의 뜻을 받들고 되새기어 이 나라의 떳떳한 국민이 되기 위해 작은 것부터 찾아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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