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설교 말씀 중에 내 마음에 특별히 전해지는 것이 있었다.
나는 지금껏 하나님께 부족한 무엇가를 채워달라고 말하기 급했지
정작 조용히 침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는 게을리했다.
아니 아예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 말을 전하기도 시간이 촉박한데 음성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밭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것이 어찌 신앙생활에서만 국한되겠는가.
가족간에도 친구간에도 회사동료간에도 나는 듣기훈련이 부족하다.
늘상 시간에 쫓기며 살다보니 내 말만 빠르게 전하고
상대의 말은 차분하게 듣지 못한다. 의사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 말만 통고하는 식이다. 이것은 가족간에 더욱 심하다.
특히 아들에게는 명령만 내리는 무서운 상관 스타일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이런 나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나는 나였다. 어느 누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어른이 되니 부모나 스승의 직접적인 조언을 구할수도 없었다.
지금은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이다. 특히 나의 잘못된 습관을...
친구들 모임을 갖게 되면 이런 것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예전에는 주로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차분하게 남이
하는 얘기를 듣기 보다는 좌중을 휘어잡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주로 하는 나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나는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나는 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다. 나는 너보다 더 행복
한 사람이다. 이런 내 안의 교만을 드러내는 얘기들이였다.
얼마나 어리석은 나였는지....
그랬던 나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비록 말하기 보다 듣기가 몇배 어렵지만 또한 장녀이고
참모보다는 리더격인 내 기질상 더욱 어렵지만
나는 듣기 훈련에 들어갔다. 애기를 나누다보면
상대에게 말할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려고 노력한다.
성격상 말을 잘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그에게
질문을 해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특히 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또한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치고 내 말을 쏟아붓고 싶은
상황에서도 나는 꾹 참으려 한다. 한마디 맞장구 치다보면
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릴수 있으므로...
간혹 말많은 예전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참 안타깝다. 그 말속에는 덕이 되지 않는 말들이 태반이다.
이런 의미없고 지혜없는 그들은 나를 더욱 돌아보게 한다.
그렇다고 아예 내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그래, 니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내가 한번 들어보마
계산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말을 삼가하다보니 훨씬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내 안의 교만도 점점 사그라지고 그렇게 하다보니
깊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동안에는 듣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껏 양방통행이 아니라 일방통행만 했던 것이다.
듣기 훈련....쉬운 것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요즘 우리 나이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행하고 있다. 적어도 그렇게는 살지 말자.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사람의 잣대가 아니라
내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진리를 품고
언제까지나 끝까지 옳은 일을 선택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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