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나는 나 너는 너

순수산 2009. 6. 16. 10:33

"언니, 대봉투에 주소 좀 써 주세요."

"왜, 네가 쓰지 않고."

"제가 쓰면 절대 크게 써지지 않고 쓰면 초등학생 글씨가 되어버려요."

"참 신기하네..."

 

어쩌면 이렇게 서로 비슷한 점이 거의 없는 사람이 모여 한 사무실에 근무하는지 나와 다른 직장 후배동료를 보면 참 신기할 때가 많다.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 어찌 똑같은 사람이 같이 만날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다가도 문득 문득 상황에 부딪치면 또다시 나와 다른 그녀를 내 잣대로 제단하게 된다. 아주 최근에서야 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생의 선배이자 직장의 선배라는 이유로 나는 그녀에게 발언권이 센 것이 사실이다. 나는 목소리가 큰 편이다. 업무상 여성성보다는 남성성이 훨씬 강하다. 저돌적이다. 일이 순조롭게 되지 않으면 흥분도 잘 한다. 여성이 약자에 속한 이 세계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이 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자 동료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강하게 대한다.

 

나의 장점처럼 보이는 이런 단점을 후배동료는 정반대로 갖고 있다. 적에도 내 눈에는 그렇다. 후배 눈에는 전혀 아닐수도 있지만....사무실 책상 위 탁상달력을 보면 우리의 성격은 판이하게 드러난다. 30 여칸의 공백이 가득 스케쥴로 적혀 있는데 내 글씨는 크다못해 거의 낙서수준이다. 동료는 깔끔하게 자를 대고 적어놓은 것처럼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다. 글씨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봐야될 정도로 작다. 그 글씨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업무 성격상 많은 것을 써 놓아야 하지만 그렇게 글씨를 작게 쓰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했던가. 매사 조용하고 순종적인 그녀를 보면 답답하게 생각되고 분명 성질나는 상황인데도 상대와 싱글싱글 웃음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 참 지조없게 보인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는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상대가 잘못 걸리면 그 사람 뼈만 추려야 될 것이다. 20 여년 이상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월이 흘려 나이를 먹고, 후배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다보니 착하고 성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똑똑하고 당차고 센스쟁이였으면 참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이중성은 필연적으로 차이(差異)를 차별(差別)의 근거로 삼는다.


나와 다른 남을 ‘다른 그대로’용인하라는 똘레랑스 사상,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아직 부족하여, 나와 다른 사상, 나와 다른 신앙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기꺼이 동의해왔다. 이 사회에서 차이는 차별의 징검다리 없이 곧바로 인권침해를 불러왔던 것이다." <십시일反 中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십시일反>이란 책을 보면서 홍세화님의 이 글을 읽게 되었다. 책 내용은 10인의 만화가가 차별없는 세상을 그려놓았는데 나부터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격을 모독했었고 정죄하고 이해보다는 편견을 갖었다. 쉽지 않지만 내가 아닌 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서로 어울리는 사회가 아닐까. 나와 똑같은 기질의 사람과 같이 근무하라고 하면 허구한날 불꽃튀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완전하지 않는 인간이기에 나는 누굴 정죄할 자격이 없다. 온전하신 하나님 외에는 그렇게 나 잘났다고 내세울 자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은 교만이 앞서 나보다 연약한 약자 앞에서는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고 얇팍한 지식으로 가르치려고 든다. 

 

뭐든지 반들반들하게 닦고 청소도 잘하고 정리정돈도 잘하는 후배가 고맙다. 일을 깔끔하게 잘 처리하는 직장후배가 있기에 그나마 우리 회사가 순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일삼찬을 하자. 하루에 상대의 좋은점 세가지를 콕 찝어내어 구체적으로 칭찬하자. 칭찬도 훈련이 되어야 하고 습관이 들어야 입술에서 술술 나온다. 내 입술을 통해 나가는 말들이 상대를 살려주고 응원해주고 덕을 세워주도록 하자. 알알이 영근 내 입술의 열매를 맛있게 따먹으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