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1]/생각, 사유의 공간

한 겨울에도 여전히 개나리로 피어 있기를...

순수산 2011. 9. 30. 16:16

 

<카푸치노, 고구마라떼, 녹차라떼>

 

 

 

녹차라떼를 시킨 친구가 달력에 크게 [개나리 모임]이라고 적어놓았단다.

그 친구 신랑 왈~

"무슨 개나리야~ 이 가을에 코스모스도 아니고...ㅋㅋㅋ"

 

맞다. 봄도 아니고 가을에 우린 개나리모임을 했다.

좀 촌스럽긴 한데...모임 이름이 개나리인데 어쩔것인가~

어제 우리는 좀 쓸쓸한 [개나리]모임을 했다.

두달에 한번씩 만나기로 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은

바쁜 일상으로 네달에 한번씩 만나는 계절모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20년 넘게 모임을 유지한 것을 보니

우린 정말로 친구 맞다.

 

 

이 모임은

남쪽지방에 살고있는 네명의 친구들이 모여 사는 얘기를 나누며

그동안 여러모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수다의 시간이며 위로의 시간이 된다.

 

그런데 한 친구가 오지 않았다.

내가 총무라 전화를 걸었더니, 모임에 참석하기가 힘들것 같다는 것이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응, 신랑이 많이 아파. 옆에서 간호해야 돼.

어디가 아픈데...

.....................

 

폭풍같았던 2개월의 시간을 친구는 어떻게 보냈을까.

친구는 담담하게 나한테 그동안의 상황을 전했다.

다음에 우리 셋이 찾아간다는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린 어느 누구도 아무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동안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녹차라떼를 시킨 친구는 벌써 울기 시작하고...

터무니 없게도 거짓말이기를 바랬는데, 현실이란다.

어쩜 그럴수가 있을까...

이건 아니잖아~

 

 

불 위에서 열심히 끓고 있는 오리 사브사브를 먹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맛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올 줄 알고 그 친구 몫까지 4인분을 시켰는데, 왜 그렇게 양이 많게 느껴지는지...

맛난 음식이 아니라 먹어 해치워야 한다는 짐으로 느껴졌다.

 

창 밖에는 쓸쓸한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 우리가 많은 인생 얘기를 나눴다.

아직도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많을거라 믿고 있는 우리가 어줍잖게~ 어제는 그 개념이 흐려졌다.

 

마음이 심란할때는 달달한 고구마라떼를 마시고 싶어진다.

음식점을 나와서 우린 그냥 헤어질 수 없어서 카페에서 차 한잔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카페 드 아퀴떼르메]

왜 그렇게 카페 이름이 어려울까?

이것도 요즘 트렌드 흐름일까...

 

 

 

카푸치노를 시킨 솔로인 친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참 많은 얘기를 했다.

우리야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로 버티는데,

이 친구는 이날따라 아주 작게 느껴졌다. 

 

 

"친구~ 너는 어쩔때 행복하다고 생각하냐?"

 

인생 별 것 없어~

먼 미래의 행복을 저당 잡아놓고 지금 죽어라 살 수는 없지.

그런 사람들 바보같아~지금 살면서 인생을 즐기는 거야.

책을 읽을 때 행복으로 가슴이 벅차고

여행을 다닐때 행복하고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 한편 볼때 행복하고...

 

그래, 맞다. 인생 별 것 없다.

행복이 거창한 것에서 온다고 생각지 않는다.

지금 당장 행복을 찾으라고 하면 몇개도 찾을 수 있는데...

일단, 우리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

 

 

 

그린, 바이올렛, 브라운

각자 주문한 메뉴의 색깔처럼 우리는 각자의 색깔을 띠며 산다.

그래서 각자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서로 다른 빛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뜻맞는 동지이므로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보면 반가운 친구들이다.

 

 

 

 

 

스산한 가을이 지나가고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따사로운 봄이 오고

정열의 여름이 오더라도

우리는 항상  개나리로 만날 것이다.

먼 훗날, 머리에 흰눈이 내려 앉아도 우리는 노란 개나리로 살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친구 신랑의 건강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를 한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친구들이지만 이 기도의 힘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하므로

분명, 친구 신랑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켜 줄 것이다.

예전의 그 핸섬한 모습으로

그 건강한 모습으로 방긋 웃으며

우리랑 다시 만날 것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