俗離山(속리산)에서 /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 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책을 읽다가 보면 그 책에서 또다른 좋은 책을 만나게 된다.
이 시는 최근 읽은 책에서 만나게 된 나희덕님의 시다.
아직 속리산은 가보지 못했지만...언젠가 속리산에
가면 이 시를 읊어보리라.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
분명 아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글로 만나게 되면 난생 처음 만난 글처럼 여겨진다.
높이 오르는 자 무너지기 쉽다.
넓고 깊에 뿌리 내리는 자 단단할 수밖에 없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님을...서서히 깨닫게 된다.
더 넓은 마음으로 주변을 살필 줄 알고
더 깊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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