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이런 남편 또 어디 있나요?

순수산 2014. 2. 6. 10:56

 

 

[한라산 백록담]

 

“저 사람, 진짜 닮았지. 거 있잖아.”

남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데 일반인이 인터뷰하는 모습이 나왔다. 누굴 닮았다고 얘기하는 남편은 이름도 말해주지 않고 인상착위도 없이 대뜸 이렇게 알맹이 없는 말을 던지고 본다. 매번 이런 식이기에 순간 당황은 하지만 퀴즈를 맞추듯 머리를 굴려서 남편의 질문에 대답해줘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남편이 닮았다고 하는 사람을 나는 맞춘다.

“그래, ○○○ 닮았네.”

“거봐. ○○○ 정말로 닮았지. 내가 눈썰미가 좋아 이런 것은 잘 찾아낸다니까.”

과연 남편이 찾아낸 것은 무엇인가? 내가 복잡한 머리 굴려가며 찾아낸 것이지.

 

50대 초반인 남편은 머리로는 생각이 나는데 도통 머리에서 입까지 내려와 발설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들 나이 먹으면 그렇다고 얘기하지만 남편은 유독 심하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남편은 이름을 말할 때 성을 90%로 바꿔서 얘기한다는 것이다. 홍길동을 김길동이라 얘기하고 김제동을 박제동이라고 얘기하는데, 아마 이런 대회 있으면 1등 할 것이다. 나는 다르게 부르는 것이 더 이상하던데, 어쩜 성을 죄다 바꿔서 부르냐고 타박하면, 그래도 이름 두자는 맞추지 않냐고 우긴다.

 

남편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리모컨은 남편 전유물이 된다. 채널을 올렸다 내렸다 함께 보고 있으면 집중을 할 수 없어서 부아가 치민다. 남편은 한 채널을 오래 보지 못한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리모컨을 연필 돌리듯이 손위에 올려놓고 계속 돌린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함께 볼 때 계속 신경이 쓰여 리모컨 좀 그만 돌리라고 하면, 이번에는 리모컨을 호떡 뒤집듯이 뒤집는다. 이런 남편 또 어디 있나요?

 

남편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앉아서 가면 남편에 대한 애정도가 뚝뚝 떨어진다. 도로 위에서 남편은 헐크가 된다. 앞서가는 차량들 간섭은 죄다 한다. 저렇게 느리게 가니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오히려 사고위험이 있다는 등 외제차, 덤프트럭, 택시는 잘 피해서 가라는 등 잔소리가 끊이지 않아 귀가 따갑다.

 

남편은 근무하는 평일에는 정상적으로 50대 아저씨가 되지만, 주말이나 주일이 되면 5세 어린아이로 돌변하여 나를 귀찮게 한다. 남편의 유치한 멘트와 살가운 애교가 넘쳐 웃다 보니 눈가의 주름만 늘었다. 웃기지도 않는 개그 프로 유행어는 다 따라서 흉내 낸다. 제발 흉내 좀 그만하라고 얘기하면 흉내 내면서 본인이 즐거운지 모르쇠한다. 결혼 20주년을 함께 보낸 내 남편, 알고보면 참 귀엽고 괜찮은 사람이다. 이런 남편과 살아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