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양철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

순수산 2014. 3. 6. 16:13

 

   

   [갤러리 M 카페에서 찍음]

 

 

회사 업무차 법무사에 서류를 접수하러 갔다. 담당직원한테 서류를 전하고 차 한잔 주길래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탁탁탁 탁탁탁...." 정감어린 소기가 들렸다.

이 소리는 너무도 맑고 경쾌한 타자기 치는 소리였다. 신문을 덮고 일어서서 타자치는 직원의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지금도 타자기 사용하세요?

뚫어져라 쳐다보는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던지 직원은 타자를 그만 치고 다른 일을 보려고 일어섰다.

-죄송한데 너무 보기 좋아서 그러니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

"쑥스러운데요"

직원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할일도 할겸 다시 일거리를 들고 타자기 쪽으로 가서 탁탁탁 탁탁탁 타이핑을 시작했다.

 

사무실에 개인용 컴퓨터가 없는 것도 아니였다. 그런데 아직도 법무 사무실에는 이렇게 타자기를 써야 하는 일들이 있나보다.

타자기에 대해 담당직원에게 더 물어봤다.

-타자기 소모품은 어떻게 조달 하나요? 지금도 이런 소모품 관리하는 곳이 있나요?

"여기는 없구요. 주로 서울에서 조달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수요가 별로 없어서 소모품비도 비쌉니다.“

 

-아마 지금 타자기는 컴퓨터보다 더 비쌀 거예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듯 나는 몇분동안 직원을 더 쳐다보았다. 양철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를 제일 좋아했던 어떤 교수님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타자 치는 소리가 좋다. 내가 나이를 먹었나.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1990년대 초, 첫직장 대학교에서 근무할때 사무실에 비치된 지금의 크로바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곤 했다. 그때는 손으로 직접 문서를 작성했던 시절이였으며, 각 사무실에 한 대씩 비치된 타자기는 만능에 가까운 사무기기였다. 학교에서 배운대로 상사가 준 원고를 보고 타이핑을 하는데, 왜그렇게 손은 떨리고 오타 투성이였는지, 내 마음도 몰라주고 서류가 급하니 빨리 작성해 주라,며 완성된 서류가 나올때까지 내 옆에 서서 독촉하는 상사가 정말로 미웠다. 그 시절이 아련하게 스쳐지나간다.

 

그 후로 25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전원을 켠 후 퇴근할 때까지 컴퓨터로 일을 한다. 컴퓨터로 작성은 일은 편리하고 빠르고 정확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인정머리가 없고 구성지지 못하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 컴퓨터에 자리를 내주고 손글씨를 써보지 않으니 모처럼 글씨를 쓰려면 악필 중에 악필이 탄생한다. 하얀 종이 위에 펜을 잡고 글씨를 쓰다보면 빙상 위에 초보 선수처럼 엉거주춤 글씨가 춤을 춘다. 손글씨 썼던 옛날에는 내가 봐도 내 글씨가 참 예뻤는데......

 

탁탁탁 타자소리는 깊은 산속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처럼 맑았다.

타자치는 직원을 쳐다보며 첫직장에 대한 향수에 젖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서류는 다 됐습니다. 날인해 주시면 법원 일까지 마무리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릴 것입니다."

-녜. 감사합니다.

법무사에 후배동료를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가기를 참 잘했다. 몸값 비싼 크로바 타자기를 보게 될줄은 몰랐다.

언제가는 컴퓨터도 크로바 타자기의 신세가 되지 않을까. 지나고 나니 그 시절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