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행복,나의 글쓰기

삭막한 도시생활에도 꽃은 핀다

순수산 2014. 6. 26. 09:58

 

 

퇴근해서 아파트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고리에 쇼핑백이 하나 걸려있다. 집에 들어와 열어보니 열무김치와 상추가 많이도 들어있다. 누가 놓고 갔다는 종이메모도 없이 문자도 없이 이렇게 놓고 가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난감하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지라 마음의 빚으로 다가온다. 잘 받았다는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하는데, 누구한테 한단 말인가. 우리 아파트 1, 2라인에는 마음씨 좋은 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무엇이든 맛난 요리를 하면 가족처럼 나눠 먹는 사람들이라 아마 열무김치와 상추도 그 중에 누군가가 갖다 놓았을 것이다.

 

2층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김치를 담으면 종종 우리집 현관문에 걸어 놓고 가신다. 맞벌이 우리 부부는 퇴근한 후 곧바로 운동까지 갔다 오기에 , 밤 11시에나 귀가한다. 그러니 음식을 갖고 여러차례 우리집에 오셨을 할머니는 허탕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만나서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당신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 준 것만으로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철문으로 닫혀버린 아파트 생활이라지만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삭막한 도시생활에도 꽃은 핀다.

 

한번은 밭에서 막 뜯어온 싱싱한 상추랑 부추랑 가지랑 오이랑 고추랑 쇼핑백이 터질만큼 한가득 담아 현관문 앞에 걸어져 있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누가 갖다 놓았는지 아무리 수소문 해봐도 찾지 못한채 미스테리로 끝나버렸다. 제발 받는 사람도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메모라도 해놓고 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삭아삭 귀한 것을 먹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성경에 고난이 축복이다,는 말씀이 있다.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힘든 일이 지나고 보니 축복으로 다가올때가 있다. 나의 부족함과 내 삶의 상처가 빛나는 별로 떠오를 때가 있다. 고난과 상처를 육안으로만 본다면 인생의 하수들이다. 고난과 상처가 내 삶에 어떤 깊이 있는 의미를 부여할지 심안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훨씬 살만하고 아름답다.

 

자동차 접촉사고로 이웃과 따뜻하게 접촉한 일이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내 차를 상대편 차주가 주차하면서 충돌이 생긴 것이다. 보험처리까지 가지 않아도 될만한 태도 나지 않는 경미한 접촉인데 서로 만나 얘기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11층에서 정확히 4층 위에 살고 있는 새댁이였다. 8년 동안 같은 라인에 살면서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말이다. 그런데 자동차 접촉사고를 통해 서로 정을 나누는 이웃이 되었다. 우리는 그 사건 이후로 친한 자매가 되었다. 서로 맛난 것 있으면 나눠먹고 좋은 것 있으면 공유하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아파트 생활에 의지할 곳 없어서 외로웠다던 새댁은 인생 선배인 나에게 두 아이 양육하며 힘든 일을 고주알미주알 털어놓았고 나는 경험자로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곤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주부경력 21년이라 나물이라도 갓 무치게 되면 금새 15층으로 올라가서 전해줬다. 과일이라도 사게 되면 비록 많지는 않지만 친동생이라 생각하고 종종 갖다 줬다. 새댁처럼 젊은 나이에 직장 다니며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버겨웠던 삶이 있었기에 힘들어하는 새댁을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으로라도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언니, 저는 맨날 받기만 하고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서 어쩌까요~”

내가 뭐라도 갖다주면 새댁은 늘 이런 말로 마음을 전한다. 나는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많기에 나눠 먹었던 것이다. 나누다 보면 내가 더 부자가 된 느낌이고 나또한 여러 좋은 분들한테 받았기에 그 사랑을 내 방식대로 되돌려 주는 것 뿐이다.

 

이름 없는 누군가에게서 받은 상추를 절반 덜어 15층 새댁네 현관 문고리에 걸어놓고 문자 한통 남기고 운동을 갔다오니 새댁한테 답장이 와 있었다.

15층 새댁 문자: “언니, 열무김치와 상추 제가 갖다 놓은 거예요.”

11층 구댁 문자: “새댁이 갖다 놓은 거야. 하하하 난 그것도 모르고 준 사람한테 다시 나 눠줬으니~ 우리 관계 너무 웃기지 않아. 문자라도 남겨놓지 그랬어~”

15층 새댁 문자: “별 것도 아닌데요. 열무김치 친정엄마가 담가주셨는데, 맛있더라구요.”

11층 구댁 문자: “그래, 고마워~잘 먹을께. 오늘도 두 아들과 씨름하느라 수고 많았어. 편 안한 밤 되고 푹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