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어디로 갈까? 우리부부가 한달이면 한번 이상 고민하는 과제다. 당일 코스로 가야 하기에 먼거리는 정하지 못하고 전남이나 전북 쪽으로 정해서 가곤 한다. 이번 산행은 내가 신뢰하고 꼼꼼하게 읽는 잡지책 [삶의 향기]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코너에 소개된 동악산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신선의 땅이라고 기록된 전라남도 곡성을 품에 안은 진산이 해발 735m의 동악산(動樂山)이다. 660년(신라 무열왕 7) 원효대사가 도림사와 길상암을 세울 때 하늘의 풍악에 맞추어 산이 춤췄다고 해서 동악산이라고 일컫는다는 전설이 이어져 내려온다. 산세가 깊고 아름다워 곡성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동악산이 품은 여러 골짜기 가운데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은 청계동이다.” -<삶의 향기> 일부 발췌-
스케일이 있지, 남편은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라 가까워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래도 시원한 계곡도 있으니 내가 꼭 가보자고 하자 못 이기는척 동행했다. 간식은 그야말로 간단히 챙겨서 배낭에 넣고 혹시 모르니 우비도 챙겨봤다. 쉽게 길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짊어지는 것이 많아서 그럴수도 있다. 가볍게 산책을 하든, 등산을 준비하든 주부들은 무슨 음식을 챙겨서 갈까, 고민하다가 아예 출발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수적인 것에 억매이다 보면 원래 의 목적을 이루기 힘들다.
동악산에 도착하여 도림사 계곡를 따라 등산을 하는데 물줄기 소리가 더위를 식혀줬다. “야아~ 진짜 좋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가족, 연인 단위로 계곡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는데 이 무더위에 우리처럼 등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지는 동악산의 정상이니, 계곡에 있는 사람들을 뒤로한채 한걸음씩 바삐 걸어 올라갔다.
숲으로 우거진 산을 올라갈수록 습한 기운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깊은 산속에는 우리부부만 달랑 있다. 그래서 등산객을 만나면 반가워 인사를 건넨다. 남편은 뒤처지는 나랑 발맞춰 걸어가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오직 정상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갔다. 제발 좀 천천히 걸어가라고 부탁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는 남편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등산은 언제나 혼자 걷게 된다. 순전히 내가 나한테 묻고 답하는 나와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갖게 만든다.
힘들어도 등산을 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모든 것을 내주고 품어주는 자연 속에서 쓸모없는 내 욕심을 내려놓게 된다. 한주 동안에 쌓인 스트레스도 푼다. 교만했던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옹졸함도 큰마음으로 내려놓게 된다. 대자연의 품에 안기게 되면 나는 한갓 미물이 된다. 내 잘란 맛에 살다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된다. 또한 맞벌이로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등산을 하게 되면 남편과 소통의 자리가 된다.
땀을 흠씬 쏟고 나면 오히려 개운해진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겹게 정상에 올랐는데, 정상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가 쏟아졌다. 우비를 챙겨서 다행이다. 우비 위로 우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경쾌하다. 유비무환, 준비된 자는 걱정거리가 없다. 우비를 챙기지 않았다면 내리는 비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겠지만 우비가 있기에 비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물주기가 되었다. 그래도 산이라 땅이 미끄러워지니 조심해서 내려왔다.
산에 오를 때 가장 부러운 사람은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오르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내려오는 입장이 되기에 산을 늦게 오르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겠다. 내려오는 발걸음은 훨씬 가볍다. 정상에서 간식을 거의 다 먹어서 배낭이 가볍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할 일을 다했기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숙제를 다한 느낌이다.
빗속을 뜷고 내려오는 길에 드디어 계곡을 만났다. 몸은 땀과 비로 젖을대로 젖었다. 남편은 두말없이 훌러덩 벗더니 계곡물에 뛰어들어갔다. 계곡물이 약물이였을까. 남편이 내려오는 길에 발이 아프다고 하더니 계곡물에 몸을 담근 후 고통은 한순간에 날아갔다고 했다. 산속의 계곡물이 동네 목욕탕의 냉탕에 비교되겠는가. 탁 트인 자연 속에 흘러가는 물소리만 들어도 체증이 내려갈만큼 경쾌했다. 거친 숨이 목까지 차 오르고 후두둑 땀을 흘리며 한걸음씩 걸어 올라가는 힘겨움이 없었다면 하산하고 계곡물에 몸을 담갔을 때 그렇게까지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등산은 이런 맛에 하게 된다.
이번 동악산 등산도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일단 집에서 가깝고 시원한 계곡물이 좋았다. 등산후 다리의 피로를 풀고자 대중탕에 가서 목욕을 했다. 개운한 상태에서 남편과 외식을 하고 주말저녁 모처럼 텔레비전을 봤다. 이런 하루의 과정이 다음 일주일을 살아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된다.
[지칠대로 지친 모습]
[물, 토마토, 오이, 삶은 달걀, 구름떡, 자두 간식 끝!]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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