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산 이야기[2]/힐링,나의 산얘기

[무등산] 10월의 어느 멋진 날, 가을산행을 떠났다

순수산 2015. 10. 30. 11:53

 

 

 

몸이 말을 걸어온다. 시월의 멋진 날이 다가기 전에 등산을 어서 하자고 내 몸 어딘가에서 아우성을 친다. 지난 달에는 추석 명절이 있어 바쁜 와중에도 백아산과 계룡산에 다녀와서 충만한 구월이 되었다. 이번 달에는 모임과 행사로 바쁘기도 했지만 남편과 둘만의 등산을 하지 못하고 3주가 지나가자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근질거렸다.

 

황금같은 시월의 마지막 주말이 찾아오자 모든 일을 미루고 일단 억새를 만나러 무등산 장불재로 향했다. 오후 3시에 교회로 봉사하러 가기로 약속이 잡혀있기에 빠듯한 산행이었다. 혹시라도 시간이 촉박해 장불재까지는 못가더라도 등산을 함으로써 숨통을 틔이고 싶었다. 남편과 함께 하는 산행이 어느덧 중독이 되어버렸다.

 

삭막한 도시를 지나고 주차장을 방불케할만큼 수많은 차량들을 뚫고나서야 산장 입구에 들어섰다. 초록 이파리보다는 갈색 이파리와 단풍든 이파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울긋불긋한 이파리들을 보는 순간 피로에 쌓인 눈은 시원하게 정화가 되었다.

 

바람이 한차례 불어대자, 우리가 지나가는 길 위로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진다. 붉은 꽃잎처럼 떨어지자 손으로 잡아본다. 싸그락 싸그락 낙엽 밟는 소리가 꼭 팝콘 터지는 소리같다. 그 소리는 소음의 더께로 덮여 있는 내 귀를 씻겨준다.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나뭇잎 끝이 말라서 타들어 갔다. 그 와중에도 단풍든 잎만 나무 아래에 떨어져 수북하게 쌓였다.

 

나무로 우거진 숲길을 걸어야 하는데, 장불재로 가는 길은 넓은 찻길이였다. 하필이면 공사하는 차량들이 오며가며 먼지를 풀풀 일으켜서 우리는 동화사 터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올라갔다. 가파른 길이라 기분좋은 땀을 흘리면서 남편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장불재로 가는 길을 계획했을지언정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돌아서 가기로 했다. 살다보면 돌아가는 낯선 길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

 

뜬금없이 남편은 “나중에 나 죽거든 혼자 청승맞게 살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서 꼭 재혼해.”라고 말했다. “아이구 120세까지 살꺼잖아요. 그땐 내몸도 귀찮으니 그냥 혼자 살래요.” 우리는 농담을 시작으로 산행 내내 대화를 했다. 산이 그리워 산행을 기다렸지만 정작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은퇴까지 얼만 남지 않았는데, 무엇을 하면서 노년을 보낼 것인지 준비를 빨리 해야 겠어.”라고 남편이 말했다. 젊은시절 한겨울에도 냉수마찰로 건강을 다졌던 남편이 지금은 샤워할 때마다 온수를 쓴다. 감기라도 걸리면 회복이 더디어 여러날 고생을 한다. 쉽게 피곤해하고 지쳐 보일때도 많다. 맛을 떠나 내가 해준 음식은 무엇이든 감사하게 먹었는데 지금은 맛이 없으면 먹지 않는다. 50대 중년이 된 남편의 모습이 어쩔땐 짠하다.

 

동화사 터로 가는 길목에서 히끗히끗한 억새를 만났다. 그때서야 우리는 준비해간 셀카봉을 가방에서 꺼내 머리를 맞대고 부부사진을 찍었다. 각자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서로 독사진을 찍어주다가 하늘 높이 셀카봉을 올려서 둘만의 사진을 찍다보면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5초 안에 찍히는 자동 타이머 때문에 웃겨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우리 부부의 재롱둥이는 단연 셀카봉이다.

 

약속시간이 빠듯해 동화사 터까지만 가기로 했다. 억새를 배경으로 부부사진을 찍었는데 억새보다 남편의 머리카락이 더 하얗다. 시아버지가 백발이라 유전이겠지만 남편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며 염색을 하지 않는다. 바위에 앉아 준비해간 단감을 먹고 커피를 마시자니 너무 행복해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란 노래가 저절로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 사랑은 가득한 걸 /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10월만 되면 이 노래가 떠올라 몇차례 부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의 대표곡이다. 남편을 만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탁월한 선택이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남편과 함께 한 가을 산행의 아름다운 시간을 되새기며 삭막한 일상을 행복하게 즐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