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 전망대에서]
초행길은 서툴기 마련이다. 몇년 전에 장흥 사자산을 처음 갔을 때 가시넝쿨 헤치며 힘들게 다녀온 후 우리부부는 다짐한 것이 있다. 절대로 등산객이 별로 찾지 않는 알려지지 않는 산은 가지 말자였다. 무엇이든 처음은 익숙치 않아 어리버리하게 된다. 산행이 목적이었는데 결국 만덕산 정상인 깃대봉은 가지 못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이유이다.
산에 가려면 백련사를 찾아 그 길을 따라 오르면 되는데, 남편은 그 길을 찾지 못하고 만덕산 주변만 차로 두바퀴나 돌았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으로 만덕산을 찾아서 겨우 올라가는데 임도인 듯 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고 오르는 동안 등산객이 한사람도 없었다. 더 깊은 산속으로 가는데 을씨년스런 기분까지 들었다. 우리는 사자산의 쓰디쓴 경험이 떠올라 바로 하산을 했다. 길치 남편과 산행하기 참 고달프긴 한데 그래도 스토리는 남긴다고 위안을 삼는다.
찻길 옆에 작은 이정표가 있어서 깃대봉을 찾아 올라가긴 했는데, 알고보니 만덕산 건너편에 있는 아주 작은 깃대봉이었다. 정약용 남도유배길이라는 등산 알림띠를 보니 웬지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또 우리부부만 달랑 걷고 있었다. 우리는 쉼터에 앉아 가지 못한 만덕산 정상을 바라보며 어이가 없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다. 겨울 동안 산행을 안했더니 감이 떨어졌나보다. 그런들 어떠하리. 우리집 뒷산처럼 아늑한 산에 올라 강진 바다를 내려다보니 이것이 힐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성난 칼바람도 만났다. 폐부까지 시원하다.
석문공원 사랑+구름다리를 올랐다. 오르는 길에 세종대왕(탕건) 바위를 올려다봤다. 약선관을 쓴 인자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구름다리를 지나갈 때 바람이 세게 부니 다리가 출렁출렁거렸다. 다리 가운데에 이르자 강화유리로 만든 창도 있었다. 다리 아래가 훤히 내다보여서 아찔했다. 석문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다산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산 기념관은 정약용의 출생부터 성장, 관직생활, 유배생활, 해배 이후의 기술활동 등 다산의 삶을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다산은 1762년,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진주목사를 지낸 아버지 정재원과 어머니 해남 윤씨 사이에게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4세때 천자문을 배우고 10세 때 자작 시집을 낼 만큼 총명하였다. 정조 사후 천주교 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 된다.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생활을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으로 승화시켜 500권의 방대한 저술을 이루게 된다. 1836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자택인 여유당 뒷산에 묻혔다. 대표적인 저서로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저서한 『목민심서』, 홍역 치료에 관한 의학서적인 『마과회통』이 있다. 1806년, 부인 홍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시집올 때 가져온 치마를 보내왔는데, 이후 이를 정성스레 잘라 두아들에게는 훈계의 내용을 적어 엮은 것이 하피첩이고, 시집가는 딸에게 그림을 그려 준 것이 매화병제도 이다. <다산 박물관 안내책자 참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기념관에서 나와 30여분 달려서 마량향을 찾았다. 놀토수산시장이 있다기에 남편이 좋아하는 회를 먹기 위해서였다. 우리부부는 어디를 간다고 하면 나는 볼거리를 담당하고 남편은 먹거리를 담당한다. 남편은 인터넷 검색을 미리 해뒀기에 우리가 갈 식당을 바로 찾아갔다. 광어를 시켜 먹었는데 남편이 워낙 회를 좋아하기에 나는 서너점 먹고 남편에게 양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먹는 것에서는 남편을 많이 배려하는 편이다.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창문에서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신선한 회를 둘이 먹는데 이 모든 상황들이 감사하게 다가왔다. 우리집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강진에 와서 산책도 하고 맛난 음식도 먹고 기억에 남을만한 사진도 찍고 우리부부는 짝짝꿍 참 잘 논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나서 마량향을 둘러보았다. 속이 든든하니 여유가 생겼다. 조형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등대쪽으로 걸어가며 이런저런 얘기도 나눴다. 우린 젊기에 공중부양도 했다. 멋진 한컷을 위해 열 번도 넘게 뛰었다. 비록 헉헉거렸지만 이 모든 것이 웃음을 주는 추억이 되리라.
이번 강진투어는 산행보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500권의 저술을 남겼다니 실로 놀랍다. 작금의 전업작가도 한평생 100권 남기기 힘든데, 그옛날 어려웠던 시절에 수백권의 저술을 남겼다는 것은 유배라는 고통과 상처의 시간들을 반짝이는 별로 승화시킨 분이라 생각한다. 다시 강진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필히 만덕산 깃대봉을 오르리라. 구름다리에서 백련사쪽으로 가다보면 우리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깃대봉을 만나리라.
[석문산과 만덕산을 잇는 구름다리]
[세종대왕 탕건 바위/ 세종대왕이 약선관을 쓰고 인자한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의 바위]
[구름다리 강화유리 위에서]
[작은 깃대봉에 앉아]
[다산 기념관]
[광어회 전식]
[마량향 조형물에서 리얼포즈를 잡고]
[발레리노 같다]
[개구리 뻘쩍 뛰는 것같은 공중부양]
[하얀 등대]
[빨간 등대]
[강진 청자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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