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객관적인 판단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상대가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요즘 무슨 무슨형 인간이라며 흔히 말하는데 인간을 한가지로 결정짓기도 그리 녹록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성격을 토대로 나눌 것이다. 다양한 성품 속에 현재 처한 환경과 돌발적인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여러 갈래의 복잡한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대체로 어떻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타인이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고 더불어 본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과연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에 포함될까? 쉽게 말하면 남편과 정반대에 속한 사람이다.
남편은 처음과 끝이 철저하게 같은 철두철미형이다. 결혼11년째 살아오면서 한 입으로 두말 한적이 없다. 작심삼일은 그의 사전에 찾아볼수 없다. 계획하에 시작된 일은 성과를 보고서야 계획을 거둔다. 감정의 동물 인간이 어찌 저렇게 기계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남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정확한 사람이다. 나는 말이 먼저 앞선다. ‘내일 빨리 일어나야지’, ‘이제 운동해야지’, ‘공부 열심히 해야지’... 실행 하기전 말을 여러번 한다. 하지만 실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말들은 10퍼센트도 안된다. 남편은 말이 없다. 그냥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지금껏 새벽 6시에 기상하여 동네 운동장에 가서 1시간씩 조깅하고 1주일에 3일씩 반신욕을 하고 한달에 두 번씩 헌혈을 줄곧 해온다. 수첩에 써 놓지도 않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행동하는지 신기하다. 그이의 몸 어딘가에 컴퓨터 칩(chip)이 부착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각하면 바로 작동하게끔 하는 것은 아닐지.
“주인님, 일어날 시간입니다”, “주인님, 반신욕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지극히 인간다워야 한다고 남편에게 얘기한다. 사람이 빈틈도 보여야 하고 실수도 간혹 저지르고 약한 모습도 보여주어야 인간적인 정이 스며든다고... 남편의 모든 것에 절반도 못미치며 살아가고 있는 나. 아무리 부부라지만 자존심이 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매사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 말로 쉽게 무마하려는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겠는가. 친구들 사이에서는 좌중을 휘어 잡을 정도로 재미있게 얘기를 잘 하는데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남편 앞에서는 도통 버벅거리게 된다. 요즘 ‘논술지도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건 남편 앞에서 논리적으로 얘기하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융통성 없는 남편과 사는 내게 친구들은 측은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는 단점만 들추어 내는 것이지 그 속에 숨겨진 장점을 모르는 얘기이다. 남편은 철두철미한 사람이기에 적당히 때우지 않는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이며 청소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여자인 나보다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이런 남편과 살기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편할 때가 참 많다. 실수 없는 남편이기에 신뢰가 가고 말만 앞서는 아빠가 아니기에 아이한테도 인기가 좋다. 또한 시부모님은 맏아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으신다. 그렇지만 본인의 철저한 성격에 갇혀 자유롭지 못할 때가 가장 안쓰럽다. 그이도 편히 살고 싶은 생각이 있을텐데...... 칠남매의 장남이라는 책임감과 처자식이 있는 가장으로서 회사에서는 관리자로서 어느 것 하나 대충하지 못하는 그이가 안스럽기에 정말로 내조를 잘하는 아내가 되리라.
[2005.12]
올해 결혼 20년차이다. 저 글을 쓸때가 2005년이니...8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철두철미형에 가깝다. 이런 남편과 20년을 살다보니 가장 매력없는 남자가
대충대충 사는 사람이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목표의식이 없는 남자가 가장 매력없다.
일은 본인이 벌려놓고 수습은 아내가 하는 그런 지인들을 간혹 보는데, 그 아내를 볼때마다 짠하다.
우리 부부는 차 한잔 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둘다 직장인이라 각자의 회사생활에 관하여 힘들고 어려웠던 것을 나누고
둘다 신앙인이라 신앙안에 서로 봉사하며 느끼고 감동받았던 것을 나누고
칠남매의 장남과 맏며느리로서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 나누고
대학생 아들 하나 키우면서 부모로서 해야 되는 것들을 나누게 된다.
(음대생이라 어찌나 돈이 많이 들어가든지..귀족아들 하나 키우고 있다. ㅎㅎ)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남편 안에 내가 들어 있고
내 안에 남편의 성향도 들어있음을 느낀다.
20년을 살다보니,
서로 닮은 점이 많아 졌다.
서로의 기질과 성격과 성향이 하나로 믹스되어
두리뭉실한 적당한 결정체가 형성된 것 같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남편과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철두철미형 남편의 아내가 되어
나도 절반은 철두철미형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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